松隱 朴翊先生墓 出土遺物의 考古學的 解釋
An Archaeologicl Interpretation on the artefacts found from Park Ik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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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박익묘는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방형분에 석실묘로 조성된 것인데 발굴조사 결과 석실 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관재와 지석, 청동제 수저 한 벌이 있고 화문각석과 9점의 동전은 도굴갱내에서 수습되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조성된 분묘에서 출토되는 유물상을 고려하면 박익묘에는 청동제합 세트, 동경, 철제가위, 유리제 장신구, 벼루 등이 당시의 부장품으로 매납되었을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익묘는 지석과 동전 등의 유물로 보아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 분명하지만 방형분과 석실묘, 관재의 문양, 화문각석, 수저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전통을 따라 조성된 것임을 보여주는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유물은 묘주와 장례시기를 알려주는 지석이라고 하겠다. 지석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대단히 소략한 점이 있어 그 연유는 박익의 생애와 장례 시기 등을아울러 검토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지석에 국호를 새기지 아니한 것은 고려의 사람으로 조선의 세상을 살았던 박익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조선시대에 이르면 방형분과 석실묘가 거의 사라지고 석재로 만든 지석도 그 예가 드문 편인데 박익묘에서는고려조의 전통을 고수한 까닭인지 방형으로 하고 석재지석을 사용하였다. 아울러 관에도 옻칠을한 후 그 외면에는 범자문과 중권문을 시문하여 불교적인 색채를 강하여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사용흔이 남아 있는 한 벌의 청동제 수저는 고려나 조선의 무덤에서 수저 한 벌로 출토된것도 드문 경우긴 하지만 청동숟가락은 형식 분류 상 장릉형에 속하는 것으로 고려~조선시대분묘에서도 그 출토 예가 드문 것이다. 또한 9점의 동전은 모두 중국전으로 고려시대 이래 중국에서전래된 묘장풍습이 그대로 전해진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아울러 도교적인 매지사상을 보여주는유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영락통보는 지석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유물로 1398년에세상을 떠난 박익선생의 묘가 1403년 이후에 새롭게 조성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라 하겠다. 그리고 화문각석은 연이 잎이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세 단계를 표현한 것이라고할 수 있겠고 한 쌍의 역만자원문과 연과를 함께 새긴 것은 불교적 색채를 뚜렷이 하고 있으며관재에 그려진 범자문과 더불어 분명한 불교적인 문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도굴로 인하여 화문석이 원래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것이며 각석의 4면 중 1면이 비어있는 것은벽면 한쪽에 세우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와 유사한 출토 사례가 아직은 없어 정확한설치 목적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이와 같이 박익묘의 조선시대에 조성된 분묘로는 드문 형식의 방형분의 석실묘이고 벽화는원대의 벽화를 답습하는 내용으로 그리고 있어 박익선생은 그의 말처럼 왕씨의 혼을 따라 조선초기를 살았던 마지막 고려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봉분 후면의 곡장과 병풍석 사이의부석층에서 15세기 중반의 분청자 대접과 도제 병이 출토되고 혼유석이 부가된 것은 박익묘가축조된 이래 끊임없이 유지 보수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Abstract
The artefacts found from Park Ik tomb include memorial stone, bronze spoon and wood for a coffin. To a certain extent, nine coins were found inside of the despoiling hole. Given the burial artefacts in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bronze mirror, bronze plate set, iron scissors, glass ornaments and inkstone were entombed in Park Ik tomb. The most important artefact is a memorial stone which describes the deceased and time of the funeral. Normally this kind of stone shows very simple information and so further researches regarding Park Ik's lifetime and more detailed funeral resources should be carried out. The memorial stone has not contained the nationality and this is because Park Ik regarded himself as Goryeo people not a Joseon when the tomb was constructed. When it comes to Joseon Period, people did not build chambered-tombs and memorial stones. Park Ik tomb seemed quite different from this tradition as Park Ik maintained Goryeo tomb style which is chambered-tomb with memorial stone. Also lacquered coffin with Sanskrit and other decorations were found. The used bronze spoon set found here is a quite rare example of Goryeo and Joseon tomb conditions but given its types, these spoons belong to long-curved style. Nine coins all are Chinese' and they were buried according to the China's tomb burial customs which had been the tradition of Goryeo Period. This customs also had shown the Taoism culture of buying the burial land from the God. The coin of Ming China (Youngraktongbo) is such an important artefact which proves when this tomb was made. Flower-pattern embedded stone that depicted three steps of lotus blooming and the Sanskrit decorations are all related to Buddhism culture. As of the tomb robbery, it is not certain where the flower-pattern stones belonged to. Also one out of four stones has not been found so far and this kinds of artefacts have not been reported yet. Therefore exact purpose of the artefact cannot be discussed here unless further researches undergo. Park Il tomb was made during Joseon Period but it is a very rare chambered-tomb stylewith containing of Mural paintings of Won China. Therefore Park Ik may be the last Goryeo person of Joseon Period who pursued Wang spirit as he mentioned before. Furthermore grayish- blue-powdered ceradon and ceramics of 15th century were founded backwards of the tomb and this proved that the tomb of Park Ik continued to be under the maintenance since it was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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