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의 東沃沮 정벌과 樂浪郡
Koguryǒ's Conquest of East Okchŏ and Lelang Command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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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三國志』 등의 사료에 따르면 高句麗가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에 위치하여 늘 식량 공급 등의 경제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고구려는 정복전쟁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고, 1세기경의 동옥저 정벌은 그 전쟁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동옥저 정벌에 있어서 고구려에게 최대의 장애물은 이미 이 지역에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었던 樂浪郡 세력이었다. 따라서 大武神王代 고구려는 정복전쟁은 그 목표가 바로 이들 낙랑군 세력이었을 것으로 본 연구에서는 파악하였다. 고구려는 呑列縣을 비롯한 낙랑군의 縣을 공략하여 동옥저 지역의 교통로를 확보하였으며, 그 여파는 낙랑군이 하여금 영동 7현을 방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동옥저에서 군현 세력이 사라지고 토착 小國들이 서로 相爭하는 기회를 틈타, 고구려는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정벌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동옥저에서는 여전히 親漢勢力이자 군의 지배질서를 수용하던 집단이 잔존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동 7현의 방기 이후에도 여전히 樂浪郡의 소속으로써 그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던 집단이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이들 친한세력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동옥저 정벌을 수행하였으며, 이것이 사료상에서 ‘樂浪國’이라는 나라와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이들은 낙랑군을 대신하여 토착 세력들(渠帥)에게 지배자의 입장에서 조세의 貢納을 받으며 경제적 욕구를 충족했을 것으로 분석하였다.
Abstract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such as Sanguozhi(三國志; the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Koguryǒ(高句麗) had constantly suffered economic problems because of its inadequate earth for agriculture. Thus, Koguryǒ used militaristic methods as a solution to their scarcity of provisions, and the invasion into East Okchŏ(東沃沮; Dongokchŏ) was an exemplary case for this mechanism in the first century. The biggest obstacle to Koguryǒ's conquest of East Okchŏ was Chinese Lelang(樂浪) Commandery, which had already secured control over the region using local pro-Chinese groups in East Okchŏ. Consequently, the consistent purpose of King Taemusin(大武神王)'s campaigns was to defeat these groups. Koguryǒ attacked Lelang’s counties such as Tunlie(呑列縣) to acquire a route to East Okchŏ, and the invasion’s aftereffect severed the commandery’s direct reign over the region. After Chinese commanderies’ recession from East Okchŏ, small countries(小國) started quarrels with each other, a situation which allowed Koguryǒ to easily infiltrate into this region. Arguably, the leaders of small countries were the local pro-Chinese groups who kept their identity as a part of Chinese commandery even after the commandery's recession. It was natural that Koguryǒ’s aggression targeted at these groups remained in East Okchŏ, since they were potential threats to Koguryǒ’s rule over the region. This invasion was described as a war with a kingdom named Lelang(樂浪國; Nangnangguk), supposedly one of the local countries under a pro-Chinese leader. After successful occupation of East Okchŏ, Koguryǒ adopted a similar method of Chinese commanderies’ control over the region, as it was the most effect way to satisfy their economic n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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