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농업 - 토지 비옥도와 인구·곡물 생산량의 관계를 중심으로
Agriculture in Koguryo: Focusing on the Relations Between Land Fertility, Population, and Crop Yield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논문은 중국 정사류 사서뿐만 아니라『 대원일통지(大元一統志)』, 『요동지(遼東志)』, 『전요지(全遼志)』 등의 지리서와 고고학의 출토유물과 농작물 분석, 지질학의 토양 비옥도 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참조하여 고구려의 농업 상황을 복원한 글이다. 『택리지』에서 평안도 지역이 기씨(箕氏)와 고씨(高氏), 즉 기자조선과 고구려 때는 사람이 많고 농경지가 적어서 산을 깎아 경작했다고 기록하였다. 이는 고구려 당시 인구가 많았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 을정도의 농업생산이 가능했음을 뜻한다. 『택리지』에서 비옥하다고 기록한지역과 토지 비옥도 지도의 지역을 비교하면 일치하는 지역이 많았다. 이는조선 후기 단위면적당 부양 가능한 인구수에서도 확인된다. 즉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 북부 지역의 농업 생산량이 많았음을 시사한다. 만주 지역의 땅은 『대원일통지』와 20세기 전반기의 각종 농업생산 통계 , 21세기 토질과 단위면적당 생산량 등, 토지 비옥도 지도를 비교하면 고구려가 지배한 만주 지역은 농사짓기 좋은 비옥한 땅이었다. 고구려의 지명으로 부여성(扶餘城), 현도성(玄菟城), 요동성(遼東城)을 비롯한 현재의 랴오허(遼 河)·훈허(渾河) 일대의 평원지대, 건안성(建安城) 남부 지역(현재의 遼寧省 瓦房店 市 해안 지역)이 당시의 대표적인 곡창지역으로 추정된다. 또 조선 세종 시기 8 도에서 개간한 농토(墾田) 면적이 가장 넓었던 평안도 일대 역시 고구려 시대에도 곡창지대의 하나였을 것이다. 사서와 토지 비옥도, 작물 재배 등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구려가 지배 한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은 경작 가능한 토지가 많았다. 농기구, 우(牛경耕), 수리 시설 등 농업기술을 결합하여 경작했다면 고구려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고구려-당 전쟁 이전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된 진대(陳덕大德)의 견문과 645년 당시 요동성, 개모성(蓋牟城), 백암성[白巖城, 백애성(白崖城) 으로도 표기]의 인구와 창고의 곡물을 보면 만주 지역은 성마다 수만 인 또 는수십만 인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곡물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었다.
Abstract
This article restores the agricultural situation of Koguryo by referring not only to China’s official history books, but also to geographic books such as DaYuan yitongzhi, Liaodongzhi , and QuanLiaozhi , as well as archaeological artifacts, crop analyses, and geological studies on soil fertility. Taekriji records that farmers in Pyeongan Province cultivated by cutting down the mountains, because there were many people and little farmland during the periods of Gija Joseon and Koguryo. This shows that Koguryo had a large population, and it was possible to have sufficient agricultural production to support the population. Taekriji described several regions located along the coast of Pyeongan Province as more fertile than Chungcheong Province. According to the book, eight commanderies and prefectures located on the east and west sides of the Namori River in Hwanghae Province were comparable to Suzhou and Huzhou, the grain-producing regions that are famous for the idiom from the Song Dynasty, “If Suzhou and Huzhou have a good harvest, there is no need to worry about food throughout the country.” This record also is consistent with the assessment of land fertility study, which evaluated the area as Class II in terms of land fertility. The regions recorded as fertile in Taekriji are also marked as Class II on land fertility map. A comparison of various statistics on agricultural production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the soil quality and crop yield per unit area, and the land fertility map in the 21st century shows that the Manchuria region ruled by Koguryo had fertile soil, great for farming. It is presumed that the plains around today’s Liaohe River and the Hunhe River, as well as the southern part of Guan-An castle (coastal area of Wafangdian City, Liaoning province), including the Buyeo Citadel, the Hyeondo Citadel, and the Yodong Castle, were representative grain production areas at that time.
참고문헌 (49)
- 司馬遷, "史記" (1959), 中華書局
- 班固, "漢書" (1962), 中華書局
- 范曄, "後漢書" (1965), 中華書局
- 陳壽, "三國志" (1959), 中華書局
- 房玄齡, "晉書" (1974), 中華書局
- 令狐德棻, "周書" (1971), 中華書局
- 劉昫, "舊唐書" (1975), 中華書局
- 歐陽修, "新唐書" (1975), 中華書局
- 王欽若, "冊府元龜" (2006), 鳳凰出版社
- 洪邁, "容齋四筆" (1995), 上海古籍出版社
- 金毓黻, "大元一統志 遼海叢書本", ~
- 孛蘭盻, "元一統志" (1966), 中華書局
- 劉立强, "遼東志" (2016), 科學出版社
- 李輔, "全遼志" (2016), 科學出版社
- 이중환, "택리지" (2002), 을유문화사
- 김기흥, "6·7세기 高句麗의 조세제도", 韓國史論, 17 (1987)
- 김기흥, "한국사 5(고구려)" (1996), 국사편찬위원회
- 김재홍, "高句麗의 鐵製 農器具와 農業技術의 발전", 동북아역사논총, 8 (2005)
- 리산취안, "초기고구려역사연구" (2008), 동북아역사재단
- 박규진, "발해시기 농업의 전개와 성격 -철제 농기구와 식물유체 분석을 중심으로-", 고구려발해연구, 71, pp.147~184 (2021), 고구려발해학회[DOI]
- 박양호, "중국 東北3省의 농업 환경과 농경지토양의 특성", 北方農業硏究, 39(1) (2016)
- 朴英善, "중국 동북지역에 분포된 주요 토양의 특성과 시비효과", 북방농업연구, 20 (2005)
- 朴英善, "중국 길림성 농작물 재배지역의 기상환경과 토양특성", 북방농업연구, 16 (2003)
- 朴英善, "중국 흑룡강성의 농업생태환경과 농작물 생산", 북방농업연구, 15 (2003)
- 朴英善, "중국 랴오닝성의 자연생태환경과 농작물 생산", 북방농업연구, 18 (2004)
- 朴英善, "중국 동북3성의 작물재배와 지형 및 기상환경", 북방농업연구, 19 (2005)
- 박유미, "고구려 음식의 추이와 식재료 연구", 한국학논총, 38, pp.39~67 (2012), 한국학연구소[DOI]
- 박태식, "韓半島의 三國(百濟, 新羅, 高句麗) 遺蹟址에서 出土된 炭化米의 比較", 농업사연구, 7(2), pp.153~161 (2008), 한국농업사학회
- 사공정길, "고구려의 취사용기와 취사방식", 고구려발해연구, 49, pp.39~78 (2014), 고구려발해학회
- 서민수, "고구려 전기 牛耕에 관한 연구", 석사, 사학과, pp.2014
- 여호규, "고구려의 정치와 사회" (2007), 동북아역사재단
- 오기수, "조선시대 각 도별 인구 및 전답과 조세부담액 분석", 세무학연구, 27(3), pp.241~277 (2010), 한국세무학회
- 의 高麗豆 普及과 韓半島의 農作法에 대한 一考察, "동양사학연구", 2002, 3~136, pp.동양사학회
- 최덕경, "遼東犁를 통해 본 古代 東北지역의 農業環境과 耕作方式 : 高句麗 성장기반에 대한 農業史的 試論", 동북아역사논총, 8 (2005)
- 최덕경, "古代 遼東지역의 農具와 農業技術", 중국사연구, (49), pp.1~80 (2007), 중국사학회
- 崔承洵, "擇里志에 照明된 江原道", 강원문화연구, 7 (1987)
- 최진열, "前燕 ‘昌黎時代’(289-350) 遼東・遼西 經濟", 동양사학연구, (159), pp.95~149 (2022), 동양사학회[DOI]
- 梁方仲, "中國歷代戶口·田地·田賦統計" (1980), 上海人民出版社
- 劉磐修, "盛世探源 : 漢唐農業發展研究" (2001), 江蘇古籍出版社
- 張國剛, "唐代農村家庭生計探略", 中華文史論叢, 98 (2020)
- 秦昇陽, "高句麗人口問題硏究", 中國邊疆史地硏究, 14(4) (2004)
- 祝立業, "淺談高句麗的"游女"", 博物館硏究, 2011(2)통권 : 114 (2011)
- 韓茂莉, "草原與田園-遼金時期西遼河流域農牧業與環境" (2006), 三聯書店
- 平田陽一傳郞, "唐代兵制=府兵制の槪念成立をめぐって-唐·李繁『鄴侯家 事』の史料的性格と位置づけを中心に-」, 『隋唐帝國形成期における軍 と外交』, 汲古書院(原載 「唐代兵制=府兵制の槪念成立をめぐって-唐·李繁『鄴侯家傳』の史料的性格と位置づけを中心に-", 史觀, 147, pp.2002~ (2021)
- Beinroth, Fred H., "Global Assessment of Land Quality", Sustaining the Global Farm(Selected papers from the 10th International Soil Conservation Organization Meeting (1999), Purdue University and the USDA-ARS National Soil Erosion Research Laboratory
- Hall, Robert Burnett, "The Geography of Manchuria",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152 (1930)
- Murakoshi, Nobuo, "Land Utilization Maps of Manchuria", Geographical Review, 20(3) (1930)
- Reardon-Anderson, James, "Land Use and Society in Manchuria and Inner Mongolia during the Qing Dynasty", Environmental History, 5(4) (2000)
- Stewart, John R., "Manchuria: The Land and Its Economy", Economic Geography, 8(2) (19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