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과 정치 사이에서
Between the Police and the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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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기의 의미 있는 사회 현상 중 하나는 거대한 규모의 빈곤 대중이 통치 권력의 정치적 관심과 주목을 받는 대상으로 갑작스레 부상했다는 점이다. 빈곤 대중이란 해방과 함께 각지에서 유입된 귀환자들, 농민, 노동자 계층 모두를 가리키지만, 이들의 실제 모습은 오히려 더 이상 농민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불안정한 상태로 전락한 방대한 실업 계층에 보다 가까웠다. 이 글에서는 이 몫 없는 빈곤 대중들을 향해 미군정을 비롯한 당대 정치 세력들이 수행한 ‘호명의 정치’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이 글은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경쟁적으로 사용했던 ‘농민’이라는 개념의 정치적 의도와 효과에 주목할 것이다. 당시 농민이란 실체와 윤곽이 뚜렷한 그 자체로 자명하게 존재하는 집단의 명칭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국민국가체제로 급격하게 이행해가는 현실을 창조하거나 혹은 반대로 이 상황에 균열을 가하려는 의도를 가진 문제적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해방기 최대의 이슈였던 토지개혁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었다는 점에서, 좌우 정치세력들이 표방한 농민의 개념은 제도 차원의 행위와 효력을 야기할 수 있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지니고 있었다.
Abstract
Out of a number of meaningful social phenomena which arose during Korea’s liberation period, this paper focuses on the sudden rise of masses of poor people. While the poor masses included farmers, workers and the lumpenproletariat, there was no clear distinction among them and, in many cases, the three groups overlapped. The reason the poor masses are important is that they were considered as the main subject of rule by the U.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and other right-wing entities tied to the government, as well as alternative political competitors. This paper aims to shed light to the fact that USAMGIK and political powers of the time used the word “farmers” to refer to the poor masses. Farmers accounted for 80 percent of the population, and they had the greatest possibility of becoming the basis of the country, which was undergoing development both quantitatively and qualitatively. In fact, the heated contention between the right and the left over the term “farmers” and its meaning is notable. USAMGIK issued the “Nongmin Jubo,” or Farmer’s Weekly, a newspaper in Korean, and showered all rural areas with supplies. USAMGIK’s eager “management” of farmers was primarily a strategic response against the left’s propagating the farmers. This politics of naming with regard to the farmers reflected the two different political agents that were supported in principle by the left and the right in South Korea—respectively “the people” and “the nation”—and the expectations of their eff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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