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인민의 문제성과 엘리트의 인민 순치
The Problematics of Inmin (People) and Its Domestication to Elite Politics right after South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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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을 민주적 민족 국가 건설의 주체로 사고하면서, 각종 문화 작업을 통해 인민을 국가․민족 주권의 소유․행사자로 정체화하고, 그것의 자주적․주체적․주권적 주체성을 표상하였다. 이와 같이, 인민은 해방 직후의 남한 역사를 표현하는 역사적 실체였다. 하지만 인민은 자신의 경쟁적 호명․실체들과 혼동․혼효․혼용되고 있었던 문제적 기표였다. 또한 인민은 역사적 또는 경험적 실재가 아니라, ‘정치성’이나 ‘의식성’에 의해 결정되는 ‘관념적 실체’이었다. 또한 인민의 주권적 주체상(像)은 실제 현실에서 비주체적인 존재로 재현되고 있던 인민상(相)과 충돌하고 있었다. 보다 심각하게는 인민의 주권적 주체화는 국가․정부를 객체․대상․수단화하면서 국가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지배 엘리트의 지도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면서 통치의 권위와 정통성(legitimacy)을 위협․부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 앞에서, 엘리트들은 인민 주권의 제도화, 또는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민을 자신의 의제에 순치시킨다. 먼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 주권의 입법화 과정에서 그것을 입법 대상으로, 또 이후 법에 의해, 달리 표현하면 국가에 의해 보호․보장되는 피(被)보호자로 변질시킨다. 이와 함께, 인민의 주권이 법(학)과 정치(학)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정치권’과 ‘인민권’으로, 그리고 정치권이 다시 선거권으로 규정되면서, 최종적으로 인민 주권은 정치적으로 선거권으로 제한․축소된다. 그리고 당대 엘리트들은 대의 정치제도와 ‘인민 총의’라는 장치 등을 통해 인민을 일상의 정치 과정으로부터 배제․분리하고, 나아가 통치권을 가진 국가,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통치와 동원 대상으로 인민을 대상화한다. 또한 인민은 계몽운동을 통해 일상적으로 엘리트들의 계몽․교육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인민의 탈(脫)권력화, 또는 인민 주권성의 ‘박탈’이 이루어진다. 대신, 주권은 실제적 통치권을 가진 국가, 또는 정부에게 귀속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해방 직후 인민의 시대에 인민을 둘러싸고 진행된 당대 남한 역사와 사회의 모습이었다.
Abstract
South Korean elites right after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ism, regarding inmin(people) as the subject of building the Korean democratic nation-state, identified it as a national sovereign while representing it a as a sovereign subject. This shows that inmin was a post-colonial historical entity in South Korea. Nevertheless, inmin was a problematic signifier with no clear meaning to the extent that it was confused with its rival appellations and entities such as the nation. Also, it was a product of ideation rather than a historical reality nor an empirical one. Moreover, inmin culturally constructed as a sovereign subject, and inmin existing in the real world contradicted each other. Most crucially, the national subjectivization of inmin could threaten the independent subjectivity of the state and its embodiment, the government while relegating them to the object of, or the means to, inmin constructed as a sovereign subject. At the same time, the subjectivization could de-legitimize the leading authority of contemporary ruling elites. This problematic situation led South Korean elites to domesticate people in various ways in the process of instituting the democracy of popular sovereignty. Also, the elites excluded and separated inmin not only from power politics but also from the politics of everyday life. It was this dual progress that testified to the post-colonial South Korean history which evolved around i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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