燕巖 朴趾源論
A Study on Yeonam Park, Ji-won’s Chinese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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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燕巖 朴趾源은 조선 후기의 손꼽히는 문장가이다. 박지원의 문장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이미 최고의 수준을 인정받아 학계의 연구 성과도 별도의 연구사를 정리할 만큼 많이 축적되었다. 여기서는 박지원의 문장이 아닌 시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그의 한시 작가적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박지원은 20세 되던 해부터 수년간에 걸쳐 보통의 사대부 집안 자제들처럼 과거 준비에 힘을 쏟았는데 이 시기에도 많은 한시 작품을 썼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20대의 시기에 과거를 준비하면서 학문과 문장의 역량이 점차 성숙해졌다. 이와 함께 자신이 살고 있던 당대의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은 1780년에 進賀別使로 선발된 朴明源을 따라 燕行의 체험을 할 기회를 얻었다. 시 쓰기를 그리 즐겨하지 않았던 박지원이었으나 이 燕行 기간 동안에는 비교적 많은 시작품을 지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의 한시 작품은 그 수준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호방한 기풍의 문장가이면서도 한시 작품에서는 세밀한 관찰력과 공교로운 묘사의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燕行 시기의 한시 작품이 지금 『燕巖集』에 남겨진 작품들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나, 현존 자료로는 그런 정황만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지원은 1786년 50세 되던 해에 兪彦鎬의 천거로 처음 出仕를 하게 된다. 1791년에는 漢城府 判官으로 옮겼다가 이해 12월에 경상도 安義縣監에 보임되었다. 그는 沔川郡守로 3년 정도 재임했다가 1800년 64세 때에 襄陽府使로 승진하였다. 이후 지병이 점차 위중해져 69세를 일기로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런 仕宦의 시기에도 틈틈이 그의 심회를 담은 여러 편의 한시 작품을 남기고 있어 주목이 된다. 박지원의 현존 한시 작품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가 율조에 얽매이는 근체시 짓기를 그리 즐겨하지 않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燕巖集』과 여타 관련 자료들에 전해진 그의 한시 작품들이 상당한 수준을 보여 주고 있는 점은 매우 示唆的이다. 더욱이 그의 北京과 熱河의 紀行 시기에는 새로운 異國 체험을 여러 시편으로 작시했을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자료의 발굴과 연구가 절실하다.
Abstract
Park Ji-won is one of the most famous vers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Here, I will examine his poetic aspect of Chinese poetry, targeting the beginnings, not the sentences of Park Ji-won. Although Park Ji-won left a few poems, it is regarded as a literary achievement that can never be overlooked in his works. As he began his studies, he was already literary enough to write his views in a long editorial. The writings left at this time show that Park Ji-won's sentence ability has already reached a very high level. Park Ji-won has been concentrating on preparations for the Taking Bureaucratic Selection Test for many years since he was 20 years old, and it seems that he left many poem works at this time. Park Ji-won finally got a traveling Beijing chance to experience when he was 44 years old. Park Ji-won, who did not enjoy writing poetry very much, seems to have made a lot of works during the period. Park Ji-won did not write much poetry, but the level of the works created was never so good. It is a sentence of a brilliant style, but it shows the skill of detailed observation and coherent description in the poem. Park Ji-won first made his debut at the age of 50, and he moved to Gyeongsang-do Aneu in December 1791. It is noteworthy that he leaves several poems containing his thinking in various periods of official time. Park Ji-won's poems are not many left behind, and it is also true that he did not enjoy making new-form poems tied to the rhythm. However, it is very difficult to see that his poems left in and other related materials show a considerable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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