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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平壤』의 시대

The Age of Dae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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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평양』은 1930년대 평양에서 나온 지역 잡지이다. 이 글에서는 당시 평양부 확장 도시 개발이 ‘대평양’으로 불렸고 동시에 1920년대부터 발전해온 상공업 도시를 ‘대평양’라고 하던 중층적 의미와, 평양의 거주지가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어 인적 구성에 분화가 일어난 점을 고려해서 『대평양』에 나타난 1930년대 일군의 평양인들이 보인 지역 현실에 대한 인식과 지향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20세기 이후 평양은 행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급격하고도 전면적으로 변화해왔다. 갑오개혁 이후부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재편되었고 그 영역도 중심지역 일대로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공업도시로 발전하면서 외부 인구가 유입되었고 평양부의 행정 구역도 인근 지역을 편입하면서 확장되었는데, 이것이 이 글에서 언급한 ‘대평양 건설’ 과정이었다. 그런데 도시 개발 과정에서 원래 중심지였던 구시가와 외부인, 특히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해 있던 신시가와의 격차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구시가에 거주하며 상공업과 관련된 조선인 유지들이 지역 언론을 규합하려는 시도를 보였고 『대평양』이 그 일환으로 간행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34년에서 1937년까지 세 차례 간행된 잡지 『대평양』을 중심으로 1930년대 평양 내 조선인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1900년대의 『서우』나 『서북학회월보』를 참고했고 그 결과 1900년대 서북학회의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지식인들이 ‘애국계몽’이라는 기치 아래 결집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담론들을 내세웠다면, 1930년대 『대평양』에서는 평양의 발전과 지역 내부의 여러 사회 문제들에 한정시켜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서북학회에서 교육에 초점을 둔 것과는 달리 『대평양』필진들이 상공업에 더 관심을 둔 것도 지역을 발전시킬 유일한 방법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평양 내 조선인들, 특히 상공업과 관련된 구시가 유지들은 상업과 중소규모의 공업 발전이라는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일제 주도하에 도시 개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평양 거주 조선인들도 발맞추어 나가는 진정한 ‘대평양’을 구현하려고 했다. 물론 이들이 지역 언론의 역할을 하고자 했을 때 당면한 현실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대평양』을 다시 상공업지에 특화시켜 상공업 발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또 평양의 조선인들을 결집시킬 구심점을 제시하기 위해 역사적인 회고와 전망도 부단히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평양인들은 이 지역이 문명이 시작한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도시의 위상을 높여왔고 1900년대 서북학회에서도 그 점이 언급되었지만, 1930년대 평양인들은 더 이상 문명을 강조하지 않았고 중앙의 수도 한양과의 격차를 좁히려는 지향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들은 회복해야 할 평양의 과거를 제시하기 위해 지역의 과거사를 회고했고 고대에 평양이 수도였고 대도회지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자와 문명이라는 과거의 유산과 결별한 구시가 조선인들은 이제 평양이 정치적인 중심지가 아니라 상공업 중심지가 되어 수도 서울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대도시가 되기를 꿈꿨던 것이다.

Abstract

Daepyongyang(Great pyongyang) is a local magazine published in Pyongyang in the 1930s. At that time, under the leadership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urban development to expand Pyongyang was carried out, and this urban development was called “Daepyongyang”. “Daepyongyang” was also a word referring to Pyongyang, which is developing into an industrial city. Daepyongyang published during this period contained both meanings. In terms of region, Daepyongyang can be compared to Seowoo or Northwest Society Monthly in the 1900s, and Daepyongyang focused on the development of the region itself, Pyongyang, if the Northwest Society magazine tried to play a leading role through solidarity in the 1900s. Therefore, Daepyongyang tried to focus on the development of commerce and industry, which is a local issue, rather than education, and in that context, Daepyongyang was interested in social issues in Pyongyang. During this period, Koreans living in Pyongyang were divided into new and old town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town were also differentiated. Unlike before, when residents of Pyongyang in Joseon dynasty emphasized where they brought civilization, they in 1930s dreamed of becoming a world-class metropolis beyond Seoul. In that context, even when looking back on the history of the region, it was emphasized that this place was the capital and a large city in ancient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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