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靜堂 徐宗泰의 自編稿 『雜稿』에 대한 연구
A study about Jabgo(雜稿) organizedby Manjeongdang(晚靜堂) Seo, jongtae(徐宗泰)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논문은 晩靜堂 徐宗泰(1652-1719)가 생전에 스스로 編次한 『雜稿』를 고찰한 글이다. 『晚靜堂集』 권11에는 「雜稿自敍」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으니, 이 글은 자신이 저술한 시문을 스스로가 정리하기로 기획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현전하는 『잡고』를 통해 서종태는 젊은 시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저술을 정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可傳’을 위한 서종태의 기록 의식이 토대가 되었다. 『잡고』의 구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책1에는 1669년(현종10)부터 1684년(숙종10) 사이의 작품들로 祭文, 記文, 論說, 序跋, 書簡, 辭賦, 絶句詩, 律詩, 排律 등이 대략 창작한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다. 이하 책7까지는 책1과 마찬가지로 한 책에 안에서는 작품들을 대략 창작한 순서대로 기록하고 운문과 산문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책1에서부터 책7까지 전체적인 창작 시기는 1669년(현종10)부터 1708년(숙종34)년까지로 서종태의 나이로 보면 18세에서 57세에 이르는 기간이다. 그런데 간행본 『만정당집』의 수록된 작품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의 작품은 1719년(숙종45) 서종태가 죽은 해에 지은 칠언율시이다. 이에 비해 『잡고』에는 1709년부터 1719년까지의 작품들이 보이지 않고, 특히 1708년 이후 창작한 碑誌類, 傳狀類 등의 작품들이 거의 누락되어 있다. 이로 보았을 때 현전하는 『잡고』는 落本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잡고』의 구성적 측면에서 주목할 점은 책8이다. 책8은 서종태-徐命倫-徐日修 3대를 대상으로 한 제문들이 수록되어 있고, 가장 늦은 시기의 제문은 1778년(정조2)에 서일수를 위해 지은 글이다. 그러므로 1778년까지 『잡고』의 書名을 유지한 채 서종태를 이어 누군가가 기록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잡고』 책8은 수록된 글의 성격상 서종태의 자편고 『잡고』에는 귀속되기 어렵고 독립된 책으로 구분해야 한다. 『잡고』의 자료적 가치는 대체로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만정당집』의 편집 과정에서 산삭된 작품들의 발굴이다. 두 번째는 최종적으로 『만정당집』에 수록된 작품의 改作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세 번째는 서종태의 문예비평관을 직간접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자료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서종태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기억과 평가를 살펴볼 수 있다. 『만정당집』의 간행 과정에 있어 『잡고』가 유일한 家藏本이었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편집 체재만 보더라도 너무 판이하게 다르고, 『잡고』는 말 그대로 두서없는 원고 뭉치에 가깝기 때문에 간행본 『만정당집』 사이에 중간 단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의문점은 定稿本 『晚靜堂遺稿』을 통해 풀리게 된다. 英祖 후기에 비로소 간행된 『만정당집』은 생전에 서종태 자신이 기획하고 진행한 『잡고』에서 서종태 死後의 정고본 『만정당유고』 단계로 큰 틀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정고본 『만정당유고』 단계에서 다시 『만정당유고』 A에서 『만정당유고』 B로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Abstract
This thesis is a review of Seo, jongtae(徐宗泰)'s self-organized Japgo(雜稿). The article 'jabgojaseo(雜稿自敍)' proves that he planned to organize his works by himself. Also, through Japgo(雜稿), we can confirm that he organized his wrorks before he died. This was the basis for Seo, jongtae(徐宗泰)'s recording consciousness for gajeon(可傳). The entire creation period from Book 1 to Book 7 of Japgo(雜稿) was from 1669 to 1708, ranging from 18 to 57 years of Seo, jongtae(徐宗泰)'s age. In Japgo(雜稿), there are no works from 1709 to 1719, and in particular, works such as bijilyu(碑誌類) and jeonjanglyu(傳狀類) created after 1708 are omitted. In view of this, it is highly likely that Japgo(雜稿) is nakbon(落本). On the other hand, the point of note in the compositional aspect of Japgo(雜稿) is Book 8. Book 8 contains a funeral oration for Seo, Jongtae(徐宗泰)-Seo, Myungryun(徐命倫)-Seo, ilsu(徐日修), and the latest funeral oration was written for Seo, ilsu(徐日修) in 1778. Therefore, until 1778, someone who succeeded Seo, Jongtae(徐宗泰) while maintaining the signature of Japgo(雜稿) did not stop recording. Strictly speaking, book 8 of Japgo(雜稿) is difficult to be attributed to Japgo(雜稿), should be divided into independent books. The material value of Japgo(雜稿) can be explained in four aspects. The first is the excavation of works deleted in the editing process of Manjeongdangjib(晚靜堂集). Second, we can look at the process of rewriting the works contained in Manjeongdangjib(晚靜堂集). Third, there are works that can directly or indirectly extract Seo, Jongtae(徐宗泰)'s literary criticism. Fourth, we can examine the memories and evaluations of the people around Seo, Jongtae(徐宗泰). The Manjeongdangjib(晚靜堂集) published in the latter part of Yeongjo(英祖), started from Japgo(雜稿) planned and conducted by Seo, Jongtae(徐宗泰) himself, and changed in a large scale to the stage of the Manjeongdangyugo(晚靜堂遺稿) post-death book. In the stage of the Manjeongdangyugo(晚靜堂遺稿), it was completed through the process from Manjeongdangyugo(晚靜堂遺稿) A to Manjeongdangyugo(晚靜堂遺稿) B.
참고문헌 (13)
- 徐宗泰, "雜稿", 규장각 소장본, ~
- 徐宗泰, "晚靜堂遺稿 A", 고려대 소장본, ~
- 徐宗泰, "晚靜堂遺稿 B", 고려대 소장본, ~
- 徐宗泰, "(영인표점) 晚靜堂集" (1996), 민족문화추진회
- 徐宗泰, "北行日記", 고려대 소장본, ~
- 徐宗泰, "夙夜錄", 고려대 소장본, ~
- 李德壽, "家乘", 규장각 소장본, ~
- "한국고전종합DB"[URL]
- 고연희, "18세기초 서종태의 연행체험 - 그의 역사관과 문예관을 중심으로", 동방학, 11 (2005),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시대 개인일기 3", ~ (2017)
- 김경희, "「晚靜堂集」 解題" (2000), 한국고전번역원
- 김영주, "晩靜堂 徐宗泰의 文學論 硏究", 漢文學報, 16(1), pp.65~83 (2007), 우리한문학회
- 김희영, "조선 성리학자들의 양명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 검토(3)", 양명학, (56), pp.41~67 (2020), 한국양명학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