晚靜堂 徐宗泰의 대외인식
Manjeongdang Seo Jongtae’s Perception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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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徐宗泰는 일찍부터 조정에 진출하여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며 숙종대 내내 관료로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정치 성향상 少論에 속하였으나, 黨爭을 혐오하고, 분쟁 사안에 대해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며, 구차하게 관직에 집착하지 않아 老論 측의 인물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무탈히 관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반면, 서종태는 명과 청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직설적이었다. 그는 燕行錄과 大報壇 건설, 그리고 명의 御寶帖을 통해 명에 대한 그리움과 복권을 간절히 표출하였고, 中華의 문물이 청에 대해 더러워지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동시에 서종태는 청과 일본과의 외교 문제에 있어서 매우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1700년 이래 荒唐船 및 청 해적 소식의 증가와 함께 掛書 사건과 같이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상황 속에서, 渭源 사건의 발발로 청과의 국경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동시기 通信使 파견에 있어 일본과의 의례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자칫 事大交隣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기 상황 속에 서종태는 누구보다도 민첩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며 사태가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수습해나갔다. 이것이 ‘皇明 遺民’이면서 동시에 ‘조선 정치인’인 서종태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Abstract
Seo Jongtae, a high-ranking official in the late Joseon Dynasty,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t his early age and served in several major government posts. Although his political views were inclined toward the Soron faction, he could retire from the government service without severe adversity as he avoided conflicts and was not obsessed with government positions. On the other hand, his assessment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was very straightforward and critical. Eager for the restoration of the Han Chinese regime, he lamented the situation in which Joseon was under Qing's control. Nevertheless, he took a flexible and pragmatic stance on th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Qing and Japan. In the midst of instability at home and abroad since 1700, when diplomatic disputes with the Qing and Japan occurred, he settled the problem with his agile and realistic analysis of the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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