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민족주의세력의 정세 인식과 ‘민족적 중심단체’ 결성 모색 -‘연정회 부활’ 계획에 대한 재해석-
A Nationalist Group's Understanding of the Political Situation and Actions for the Establishment of a National Leading Organization in 1926: Reinterpretation of the “Revival Plan of the Yônjônghoe”
0
조회
0
다운로드
1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글의 목적은 신간회 창립의 직접적 전사를 이루는 1926년 시기의 민족주의 세력의 정세인식과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신간회가 어떠한 민족운동의 맥락에서 창립되었는지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1926년 들어 사회주의운동 진영에서 민족통일전선으로서 민족운동 단체 결성이 추진되는 가운데 민족주의운동 진영에서도 민족적 중심단체, 민족적 정치운동단체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 보통선거 실시에 따른 일본 정계의 변동과 식민지 조선정책의 변화를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 1926년 7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북벌이 단행되었는데 이는 민족운동 세력 전반을 크게 고무시키는 것이었다. 1926년 9~10월의 소위 ‘연정회 부활계획’으로 나타난 정치단체 결성 추진은 일제의 공작에 의해 진행된 자치운동이 아니라, 국제적 정세의 변동에 고무된 민족주의세력이 1925년 하반기 이래 추진해온 민족적 중심단체, 민족운동의 정치조직을 결성하려는 구체적인 활동의 결과였다. 이를 주도한 것은 송진우 등의 동아일보 세력이었지만 조선일보와 기타 언론계, 천도교계의 신파와 구파, 기독교계의 기호파와 서북파 등 양대 주요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인사들이 망라되고 있었고, 조선공산당의 인물들도 연계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 사이토 총독의 정치자문이자 고등밀정인 아베와 접촉하며 자치운동의 의혹을 받고 있는 천도교 신파의 최린이 참여하면서 논란이 되었고, 또한 조선공산당으로 합류하는 김준연과 한위건의 활동에 대한 서울계 구파의 반대활동도 전개되었다. 이렇게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 내의 대립이 중첩되면서 민족운동 단체를 결성하기 위한 활동은 결렬되었다. 동아일보 계열에게 있어 민족운동의 정치조직은 민중의 자각 정도도 낮고 민중의 단결력도 미흡하고 민족 독립을 수행할 수 있는 군대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크게 변동될 때를 대비한 민중의 정치적 ‘자각’과 ‘민족적 훈련’을 담당하는 실력양성, 미래를 위한 준비 조직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핵심조직의 준비 및 구성원들 간의 사상적·운동노선상의 이념적 공유와 행동의 통일이 고려되지 않을 때, 합법적 영역에의 매몰은 개량화와 일제에 대한 타협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민족적 중심단체를 결성하려는 동아일보 계열의 활동은 1926년 11월 송진우가 구속되면서 일시 정지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다른 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신간회 결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Abstract
This research aims to explain what type of nationalist context affected the establishment of the Sin'ganhoe by examining nationalist groups' understanding of the political situation and their activities in the 1920s, which were directly connected to the formation of the Sin'ganhoe. When the socialist camp founded a movement for a national united front in the 1926, the nationalist camp also began to take actions for the establishment of a national leading organization and national political body. The nationalist groups expected changes in the Japanese political circle and colonial policies toward Korea following the enforcement of universal suffrage in Japan. In the meantime, the Kuomintang government of China embarked on the Northern Expedition in July of 1926, which was encouraging to all nationalist groups. The nationalist groups' attempt to establish a political organization, which appeared in the so-called “revival plan of the Yônjônghoe”, was not a self-government movement propagated by Japan. It was the product of the encouraged nationalist groups' concrete activities starting in late 1925 for the establishment of a national leading organization and national political body. The leading figures of the activities were Song Chin-Woo and the Dong-A Daily Newspaper group, but there were also diverse people from the Korean Communist Party as well as Ch'ôndogyo and Christian groups. In the course of their political movement, problems appeared when Ch'oe Rin, who raised suspicion of promoting a self-government movement by contacting Abe, Governor- General Saito's political councilor and secret agent, began to participate in their political movement, as well as when the old lines of the Sôul group started a campaign against Kim Chun-Yôn and Han Wi-Gôn, who had joined the Korean Communist Party. The movement for the establishment of a national organization ended in a rupture due to such internal conflicts in the nationalist camp and in socialist groups. For the Dong-A Daily Newspaper group, the self-awakening and solidarity of the Chosôn people was insufficient, and it was impossible for this to lead to the creation of an army for national independence. Thus, the political organization of a national movement meant a preparatory body for cultivating the actual ability of people's political “consciousness” and “national discipline”, providing for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political situation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their dependence on action within the legal confines exposed the danger of reformism and compromise with Japanese imperialism especially when it was not considered to agree to a shared ideology and movement among the key organizations and members. The Dong-A Daily Newspaper group's movement to establish a national leading organization was suspended as Song Chin-Woo was arrested in November of 1926, and the Sin'ganhoe was finally established by other groups.
참고문헌 (47)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URL]
- "『동아일보』 『조선일보』 『신천치』 『삼천리』 『신민』", ~
- "『齋藤實文書 10(民族運動 2)』" (1990), 高麗書林
- 김준엽,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자료편" (1980),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 강동진,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 (1980), 한길사
- 고정휴,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와 조선사정연구회", 역사와현실, 6 (1991)
- 김경택, "1910·20년대 동아일보 주도층의 정치경제사상 연구", 박사, pp.1998
- 김동명,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인의 정치운동" (2006), 경인문화사
- 김명구, "1920년대 부르주아 민족운동 좌파 계열의 민족운동론-안재홍을 중심으로-", 韓國史學報, 12, pp.6~202 (2002), 고려사학회
- 金明久, "1920년대 국내 부르주아 민족운동 우파 계열의 민족운동론", 한국근현대사연구, 20, pp.163~196 (2002), 한국근현대사학회
- 김인식, "식민지시기 안재홍의 좌익민족주의운동론", 백산학보, 43 (1994)
- 김인식, "신간회의 창립과 민족단일당의 이론", 백산학보, (78), pp.223~252 (2007), 백산학회
- 김인식, "이승복과 창립기 신간회의 조직화과정",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8), pp.241~284 (200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김인식, "이승복과 신간회 강령의 이념ㆍ노선 -민족주의 좌익전선의 선언ㆍ명문화-",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2), pp.179~220 (201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김정인, "1920년대 전반기 민족담론의 전개와 좌우투쟁", 역사와 현실, 39 (2001)
- 김정인, "일제강점기 천도교단의 민족운동 연구", 박사, pp.2002
- 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 (1973),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 박종린, "1920년대 ‘통일’조선공산당의 결성과정", 한국사연구, 102 (1998)
- 박찬승, "일제하 자치운동과 그 성격", 역사와 현실, 2 (1989)
- 박찬승, "한국 근대 정치사상사 연구" (1992), 역사비평사
- 박찬승, "1920년대 중반~1930년대 초 민족주의 좌파의 신간회운동론", 한국사연구, 80 (1993)
- 박찬승, "민족주의의 시대" (2007), 경인문화사
- 방기중, "한국 근현대사상사 연구" (1992), 역사비평사
- 방기중, "1920·30년대 조선물산장려회 연구", 국사관논총, 67 (1997)
- 방기중, "일제하 물산장려운동과 민족주의 경제사상. in : 방기중저작집 2: 근대한국의 민족주의 경제사상" (2010), 연세대학교 출판부
- 송건호, "신간회운동. in : 한국근대사론 2" (1977), 지식산업사
- 신용하, "신간회의 민족운동" (2008),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 1920~45" (1996), 아세아문화사
- 심재욱, "1920~30년대 초 고하 송진우의 사상과 활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2 (1999)
- 윤덕영, "일제하·해방직후 동아일보 계열의 민족운동과 국가건설노선", 박사, pp.2010
- 윤덕영, "1920년대 전반 민족주의 세력의 민족운동 방향 모색과 그 성격 - 동아일보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사학연구, (98), pp.347~394 (2010), 한국사학회
- 윤덕영, "1920년대 중반 민족주의 세력의 정세인식과 합법적 정치운동의 전망 ―동아일보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53), pp.73~107 (2010), 한국근현대사학회
- 윤덕영, "1920년대 전반 동아일보 계열의 정치운동 구상과 ‘민족적 중심세력’론", 역사문제연구, 14(2), pp.9~49 (2010), 역사문제연구소
- 윤덕영, "1920년대 중반 일본 정계 변화와 조선총독부 자치정책의 한계",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7), pp.163~208 (2010),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이균영, "신간회연구" (1993), 역사비평사
- 이나미, "일제시기 조선 자치운동의 논리", 민족문화연구, (44), pp.419~457 (2006), 민족문화연구원
- 이지원, "일제하 안재홍의 현실인식과 민족해방운동론", 역사와현실, 6 (1991)
- 이태훈, "일제하 친일정치운동연구", 박사, pp.2010
- 이현주, "‘서울파’의 민족통일전선운동과 신간회(1921~1927)", 한국근현대사 연구, 7 (1997)
- 이현주, "일제하 (수양)동우회의 민족운동론과 신간회", 정신문화연구, 26(3), pp.185~209 (2003), 한국학중앙연구원
- 임경석, "식민지 시대 한국의 민족주의와 민족운동", 인문과학, 30 (2000)
- 임경석, "강달영,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역사비평, (58), pp.247~278 (2002), 역사문제연구소
- 임경석, "식민지시대 민족통일전선운동사 연구의 궤적 -이균영의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3)에 대한 비평-", 한국사연구, (149), pp.377~400 (2010), 한국사연구회
- 전명혁, "서울파의 민족통일전선론 연구", 역사연구, 6 (1998)
- 전명혁, "1920년대 한국사회주의 운동 연구" (2006), 선인
- 정용서, "일제하·해방후 천도교 세력의 정치운동", 박사, pp.2010
- 한상구, "1926~28년 민족주의세력의 운동론과 신간회", 한국사연구, 86 (19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