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일본(1600~1867)의 유학 학습과 유교적 인간 형성
Learnimg Confucianism and the Formation of Confucious Human in Modern Japan (1600~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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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은 과거제를 갖고 있지 않았기에 유학 학습이 정치에 관련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이를 반영하여 유학은 관학에 한정되지 않고, 쥬크(塾)에서 서민들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이후 한코(藩校)에서는 예외 없이 무사교육으로 유학이 활용되었다. 요컨대 유학의 학습은 漢籍經書를 읽는 학습이지만, 일본에서는 ‘훈점[返り点]·오쿠리가나[送りがな]’를 붙여 훈독체 한문으로 읽혀졌다. 훈독체 한문은 일본의 문법과 문맥에 치환된 雅語를 사용한 독특한 일본어로, 소리내어 암송하기 위해 고안된 문체였다. 어린 나이에 경서를 소리내어 읽는 것(素読)은 학문의 전제였는데, 필자는 이를 ‘텍스트의 신체화‘라고 다루고 있다. 신체화된 한문 언어는 지적인 사고이기 때문에 학술적 언어이다. 중국 고전을 암송하고 번역하는, 이러한 유학의 학습은 위기의 현실 앞에서는 쓸모없고 무력한 학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서(聖人의 사상언어)를 신체화하는 것과, 강력한 정치적 실천 주체와 강인한 책임 주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크게 유효성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자학의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세계관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독선적인 주체가 되는 것을 피하고, 서양 근대를 수용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기도 했다. 일본의 막말 근대는 이러한 유교(주자학)적 주체에 선도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Abstract
日本は科挙制をもたなかったため、儒学学習が政治に関わることを前提としていなかった。それを反映して儒学は官学に限らず私的な塾で庶民にも学ばれていたが、18世紀半ば以後、藩校では例外なく武士教育に儒学が活用された。儒学の学習は、要するに漢籍経書を読む学習であるが、日本では「返り点・送りがな」を付した訓読体漢文で読まれた。訓読体漢文は、日本語の文法と文脈に置き換え、雅語を使った独特の日本語であり、かつ声に出して暗誦するために工夫された文体であった。子ども期に経書を声に出して暗誦(素読) することが学問の前提で、これを私は「テキストの身体化」ととらえている。身体化した漢文言語は、知的な思考のための学術的言語である。中国古典を暗誦し解釈するこの儒学の学習は、危機的現実の前には迂遠で無力な学問に見える。しかし、経書(聖人の思想言語) を身体化することで、強力な政治的実践主体や強靱な責任主体の形成するうえに、大いに有効性をもっていた。しかも朱子学の普遍的で全体的な世界観に裏づけられることによって、独善的な主体になることを免れ、かつ西洋近代を受容する主体にもなることができた。日本の幕末・近代は、こうした儒教(朱子学) 的主体にリードされたといってよ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