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李成桂의 婚姻關係와 경제적 기반 - 포천 滓甓洞과 鐵峴의 田莊을 중심으로-
A Study on Marriage relationship and the economic foundation of Lee Seong-gye in the Late Goryeo Perio; Focusing on Jaebyeok-dong(滓甓洞) and Cheolhyeon(鐵峴)’s farms in Po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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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이성계의 가계와 혼맥을 통하여 이루어진 인적(人的) 관계망을 통한 정치적 기반과 이성계의 선대와 이성계 자신이 마련한 경제적 기반, 그리고 그의 처가를 통해 형성된 것을 중심으로 조선 건국과정에서 필요로 한 자금의 바탕이 무엇인지를 검토하고자 한 것이다. 이성계는 공민왕대와 우왕대에 수많은 전쟁터를 쫓아 다녔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동북면에 있는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유지, 확대시키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외에 여러 차례에 걸친 전공으로 공신책봉과 함께 지급받은 토지 등도 많아서 다른 지역에서의 경제적 기반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高麗史』와 『태조실록』등에 보이는 국가로부터 전공(戰功)으로 받은 공신 책봉과 함께 이루어진 토지와 노비의 하사 사실에서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고, 포천의 재벽동과 철현의 전장은 그 실례가 된다. 또한 그것의 실체에 대하여 어느 정도 윤곽을 잡는 것이 가능하게 해주는 몇가지 문서가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이성계의 경제적 기반은 대규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성계의 대토지 소유가 새 왕조의 창업과 깊은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대규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이성계는 고려말 혼란기에 수많은 인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이 쌓여 나가면서, 조선 건국도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Abstract
In this paper, I try to study the correlation between the marriage and family of Lee Seong-gye and huge amount of money that was spent on the founding of the Chosun nation. He was fought in numerous wars in King Gongmin and Woo period. Even during the war, he paid special attention to Donbukumyon which was own economic base. Besides that, because of he received the land to a lot of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 also he had an economic base in multiple locations. However, such a fact is grasped only alternative contours, such as over a Goryeosa and Taejo Sillok. The an example is typical of Jaebyeok-dong(滓甓洞) and Cheolhyeon(鐵峴)’s farms in Pocheon. Further, it can be identified his economic base through a plurality of documents. So then economic base of Lee Seong-gye would have been a considerable scale. On the basis of these economic forces, Lee Seong-gye created a number of human resources to their side in turmoil of the late Goryeo, and He was able to founding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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