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간신 유자광의 평가 再考 - 儒敎的 名分과 士林 敍事의 해체를 중심으로 -

Reconsideration of the Evaluation on Treacherous Subject Ryu Jagwang - Focusing on Deconstruction of the Sarim's Narratives and Confucian Justification -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16세기 이후 조선의 정치를 흔히 ‘사림정치(士林政治)’라고 말한다. 그 시대의문턱을 살다간 유자광(1439~1512)은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한간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조대로부터 중종까지 5대에 걸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쏟아진 많은 부정적인 평가와 오명 때문인지,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그에 대한 외면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굳이 비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증오의 대상에 새로이 도전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은 유자광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만든 배경이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조선왕조의 개창 이후 상하·존비·귀천을 정당화한 유교적 명분론은 천첩의 아들인 서얼 유자광의 관직 진출과 정치 활동을 철저히 부정하고 거부하는 배타적논리로 기능하였다. 더구나 16세기이후 조선 정국을 주도한 뒤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사림의 정치이념은 훈구세력인 유자광을 도덕적 죄인으로 낙인찍어 역사의 감옥에 수감시킨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유자광에 대하여 근대 이후의 역사는물론이고, 현재도 여전히 부정적인 평가와 서사들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훈구나 서얼의 입장에서 반론이나 재검토를 시도해 보는 것은 15~16 세기 역사를 성격을 입체적이고도 균형적으로 판단하는데 기여하리라 여겨진다. 더구나 관찬사료나 문집에서 유자광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해석이 상당히 부정적인데 반해, 민간에서 전승되는 설화나 민담에서는 그를 오히려 긍정적 태도로 인식하는 사실도 유자광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이 글은 그 같은 문제의식 아래 유교적 명분과 사림의 정치이념이 갖는 일방적이고도 단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훈구와 사림의 관계를 바라보고 서얼 유자광의 삶과 행적을 재검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주제어

Abstract

Since the 16th century, the politics of the Joseon Dynasty are often termed ‘Politics by the Sarim (士林政治)’. Ryu Jagwang (1439-1512) who had lived at the beginning of that era is notorious for eliminating the Sarim by causing the Literati Purge of 1498 (Muosahwa 戊午士禍). Despite his political activities during five successive reigns from King Sejo to King Jungjong, the indifference toward him by the academia in history has been considered to be almost taken for granted until now due to a lot of negative evaluations and stigma regarding him. That was because many people did not feel any reason or need to make a new challenge to the subject of historical hatred that was shared by a lot of people. This illustrates the background that people have unconsciously refused objective research on Ryu Jagwang. Since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the Confucian cause which justified the high and low, the gentle and simple had functioned as the exclusive logic to deny thoroughly and refuse Ryu Jagwang to enter government office and engage in politics, as he was the son of a concubine of low birth. Moreover, after leading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Joseon Dynasty since the 16th century, the political belief of the Sarim functioned as an ideology which served as a background to put him into the prison of history stigmatized as a sinner in a moral aspect. In fact, the modern, as well as contemporary history on Ryu Jagwang has been constantly reproducing only negative descriptions and evaluations. To try to reconsider or make a counterargument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Hungu Faction or the son of a concubine will contribute to understanding the historic nature of the 15-16 century in balance and in three dimensions. Furthermore, in contrast to the significantly negative historical evaluation or interpretation on Ryu Jagwang in the historical records or collection of works, he was recognized in a positive light in the tales and folktales handed down among people. This fact supplies a reason for reconsidering the evaluations on him. With such awareness, this article focuses on reviewing the relationship Hungu and Sarim from various perspectives freed from a unilateral and narrow viewpoint possessed by the Confucian justification and political belief of the Sarim, as well as reconsidering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a son of a concubine, Ryu Jagwang.

참고문헌 (54)

  1. "高麗史", ~
  2. "世祖實錄", ~
  3. "睿宗實錄", ~
  4. "成宗實錄", ~
  5. "燕山君日記", ~
  6. "中宗實錄", ~
  7. "承政院日記", ~
  8. "東閣雜記", ~
  9. "新增東國輿地勝覽", ~
  10. "國朝記事", ~
  11. "燃藜室記述", ~
  12. "國朝人物考", ~
  13. "國朝文科榜目", ~
  14. "世宗實錄 地理志", ~
  15. "四佳集", ~
  16. "佔畢齋集", ~
  17. "大東野乘", ~
  18. "於于野談", ~
  19. "海東野言", ~
  20. "涪溪記聞", ~
  21. "高宗時代史", ~
  22. "歷代名臣法帖", 제2, 刊寫年未詳, 古 445-20, ~
  23. "靈光柳氏族譜", 家藏 複寫本, 戊戌譜 1778, ~
  24. "靈光柳氏族譜", 乾坤, 국립중앙도서관, 古 2518, 59-52, 1, 2, 丁巳譜, ~
  25. "國朝征討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2009)
  26. "司馬榜目 正統12年我世宗大王二十九年丁卯式", Harvard-Yenching Library, K 2291.7. 1746, 1447, ~
  27. "官報, 每日申報, 「세계일보」 2014.9.28", ~ (2014)
  28. 趙奎洙, "歷代陰險人物討罪錄, 朝鮮의 士禍를 츠음으로 이르킨 大凶孽·大奸物 柳子光", 별건곤, (8) (1927)
  29. 김갑주, "院相制의 성립과 그 기능", 동국사학, 12 (1973)
  30. 宋贊植, "조선후기 사회 경제사의 연구" (1997), 일조각
  31. 천관우, "조선초기 오위의 병종", 사학연구, 18 (1964)
  32. 劉永大, "說話와 身分의 문제-柳子光傳承을 중심으로", 民族文化硏究, 16 (1982)
  33. 정두희,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연구" (1983), 일조각
  34. 최영호, "역사와 인간의 대응" (1984)
  35. 유영대, "柳子光 實史의 변이양상과 그 의미", 又石語文, 2 (1985)
  36. 이이화, "이야기 인물한국사 5-역사상의 라이벌과 동반자-" (1993), 한길사
  37. 심승구, "朝鮮前期 政治史에 대한 試論-燕山君代를 중심으로", 북악논총, 11 (1993)
  38. 金貴子, "南原地域의 人物傳說 硏究 : 李成桂와 柳子光 傳說을 중심으로", 석사, 국어교육, pp.1997
  39. 민현구, "國朝人物考" (1999), 세종대왕기념사업회
  40. 도현철, "고려말 사대부의 왕안석 인식", 역사와 현실, 42 (2001)
  41. 이현진, "조선전기 昭陵復位論의 추이와 그 의미", 조선시대사학보, (23), pp.51~86 (2002), 조선시대사학회
  42. 오종록, "유자광, 으뜸가는 공신에서 간악한 소인으로 전락한 사나이", 내일을 여는 역사, 11 (2003)
  43. 진상원, "동아시아사의 인물과 라이벌" (2008), 아세아문화사
  44. 박대복, "<혼불>에 受容된 柳子光 說話와 民衆意識", 동아시아고대학, (20), pp.379~406 (2009), 동아시아고대학회
  45. 정두희, "朝鮮 成宗 9年 “戊戌之獄”의 정치적 성격", 서강인문논총, (29), pp.373~410 (2010), 인문과학연구소
  46. 이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2010), 청아출판사
  47. 김기봉, "우리시대 역사주의란 무엇인가", 韓國史學史學報, (23), pp.369~401 (2011), 한국사학사학회
  48. 이근명, "전통시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왜 왕안석에 반대하였는가?", 전북사학, (38), pp.179~198 (2011), 전북사학회
  49. 김이석, "조선시대 유자광 묘 여부 논란이 있는 남원 영광 류씨 선산 내 회곽묘 출토 인골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 대한체질인류학회지, 24(2), pp.85~95 (2011), 대한체질인류학회
  50. 박병련, "조선중기 훈구·사림정치와 광주이씨" (2011), 지식산업사
  51. 김용철, "미리보는 ‘한계례역사인물평전’ 100" (2012)
  52. 심승구, "장서각아카데미" (2013), 한국학중앙연구원
  53. 유정수, "조선왕조실록에 의한 무령군 유자광" (2014), 비전북하우스
  54. 윤영근, "유자광전" (2014)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