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고종시대 군주권 위협 사건에 대한 일고찰

A study on a Threat to Sovereignty during the Period of Kojong(高宗)’s Reign

0

조회

0

다운로드

1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고종은 한국근대이행기 43년간 군주의 자리에 있었다. 그의 즉위는 신정왕후와 대원군, 그리고 고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여전히 정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동김씨 세력의 결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방계왕족으로 철종이 아닌 익종의 대통을 잇는다는 정통성의 결여와 실부가 살아있다는 문제, 또한 제왕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자격 문제 등이 맞물려 그는 즉위 직후부터 군주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입지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특히 자신을 군주로 추대한 실부인 대원군이 권력을 한층 강화하며 정치를 전단하는 가운데, 수많은 반대 속에서 한 달 간의 정쟁 끝에 스스로 친정을 선포해야 했던 경험에 더해 친정 직후 시작된 정계와 정책 개편에서 정부관료 및 유생들과 치열한 정쟁을 벌이면서 군주권 확립과 강화를 직접 이루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이 친정을 선포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급격하게 변화되어 갔다. 이때 조선 내에서는 전통을 유지하자는 세력, 고종의 개화정책이 오히려 지나치게 온건하다는 세력이 팽팽히 맞서며 그를 압박해 왔다. 그리고 이는 고종이 군주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되어 군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친대원군세력은 고종을 폐위시키고 그의 배다른 형인 이재선을 즉위시켜 정권을 장악하려는 쿠데타 음모를 계획하게 되었고,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와의 차별문제로 군인들이 봉기해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일도 발생했다. 일부 급진개화파 세력들은 자신들이 정치를 주도하고 고종을 상징적인 존재로 규정해 국가의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결국 친정 선포 직후 친군주세력조차 확보하지 못한데다가 즉위 초기와는 다른 전통과 서구와의 충돌이라는 복잡한 정세 속에서 제반 정치세력들과 각종 정책을 둘러싼 이견까지 가시화되면서 고종은 보다 강력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친정을 스스로 선포한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고종은 강한 권력욕의 소유자였고, 따라서 각종 위기와 도전 속에서도 끊임없이 실질적인 군주권 장악에 대한 의지를 표방해 갔다.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발생한 군주권에 대한 도전은 고종으로 하여금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하고 군주권을 확립․보전하기 위해 군주권 내용에 대한 통합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군주권 유지에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어야 하는 존재들이 또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딜레마는 고종으로 하여금 항상 군주권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인식․추진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군주권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존재하는 사회를 통제하면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군주권을 성문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해 이를 구체화시키고자 했다. 을미사변 이후 아관파천을 단행해 반군주세력을 정부로부터 축출하고 일단 군주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등극을 통해 스스로에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고, 군주권에 대한 성문법 정비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결과, 즉위 36년째인 1899년, 대한국국제를 제정․반포해 국가의 모든 통치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Abstract

Kojong(고종) had been a monarch for 43 years to the transition into Modern age of Korea. In that time, Kojong had some problems what was lack of legitimate from succeed to the Royal line not Cheoljong(철종) but Ikjong(익종) as a collateral royalty, his real father still alive, and also he did not get the education of a monarch. So directly after assession to the throne, he had been faced situation that he had to make the use of monarch's ability and strengthening his position. In particular, Kojong had experiences what Deawongun(대원군) who have himself as the monarch strengthened more power and decided to politics arbitrarily, so he had to proclaim direct royal rule by himself. Therefore Kojong had became to realize he had to achieve to establishment and consolidation of royal power by himself. Kojong continuously claimed to will for hold real power while it happened these crisis and challenges because he had a strongly desire for power. In these situation, challenges to his royal power occurred in succession made him feel keenly the necessity of synthesis about the nature of the royal power for blocking attack from external and establishment of royal power. After a reign of 36 years, 1899, he became succeeded in concentrate all sovereignty to empire to establishment and promulgation Constitution of the Great Han Empire(대한국국제) as a result of his efforts to spurred to establish a statute.

참고문헌 (50)

  1. "중종실록", ~
  2. "인조실록", ~
  3. "정조실록", ~
  4. "순조실록", ~
  5. "헌종실록", ~
  6. "고종실록", ~
  7. "일성록", ~
  8. "승정원일기", ~
  9. "구한국외교문서", ~
  10. "대전회통", ~
  11. "淸光緖朝中日交涉史料", ~
  12. "淸季中日韓關係史料", ~
  13. "주한일본공사관기록", ~
  14. "일본외교문서", ~
  15. 황현, "매천야록"
  16. 박영효, "使和記略"
  17. 김옥균, "甲申日錄"
  18. 정약용, "與猶堂全書"
  19. 윤치호, "윤치호일기"
  20. 박은숙, "갑신정변연구", pp.1~615 (2005), 역사비평사
  21. 유영익, "갑오경장연구", pp.1~302 (1990), 일조각
  22. 이현희, "우리나라 근대 100년", pp.1~513 (1997), 새문사
  23. 한국정치외교사학회, "갑신정변연구", pp.1~266 (1985), 평민사
  24. 홍순창, "한말의 민족사상", pp.1~314 (1975), 탐구당
  25. 伊藤博文, "秘書類纂 朝鮮交涉資料 下" (1940), 原書房
  26. 池井優, "日本外交史槪說" (1982), 東京
  27.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백년전 한국의 모든 것", pp.213~ (1994), 살림출판사
  28. James Palais B, "Political Leadership in the Yi Dynasty" (1976),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9. 김성혜, "고종 재위전기 통치에 관한 연구(1864~1876)", 박사, pp.2008
  30. 김성혜, "고종 친정초기 次對를 통해 본 국정운영(1874-1876)", 이화사학연구, (38), pp.35~66 (2009), 이화사학연구소
  31. 김성혜, "재위전기(1864-1876) 고종의 강연과 그 실태", 사학연구, (93), pp.191~240 (2009), 한국사학회
  32. 김성혜, "고종 친정 직후 정치적 기반 형성과 그 특징(1874~1876)", 한국근현대사연구, (52), pp.7~48 (2010), 한국근현대사학회
  33. 김현철, "2차 일본망명시기 박영효의 행적·정변시도", 한국근현대사강좌, 11, pp.31~55 (2000)
  34. 박성수, "갑오개혁", 한국사학, 16, pp.47~68 (1997)
  35. 서진교, "대한제국기 고종의 황제권 강화정책에 관한 연구", 박사, pp.1997
  36. 송병기, "고종초기 외교. in: 한민족독립운동사 1", pp.43~95 (1987), 국사편찬위원회
  37. 신용하, "1895년 을미개혁 사회사", 한국학보, 85, pp.45~73 (1996)
  38. 오영섭, "갑오경장 중 고종의 군권회복운동. in: 구한말의 민족운동", pp.1~80 (2000), 국학자료원
  39. 왕현종, "갑오개혁연구", 박사, pp.1999
  40. 윤병희, "제2차 일본망명시절 박영효의 쿠데타음모사건. in: 李基百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하)", pp.1678~1707 (1994)
  41. 이태진, "갑신정변에서 ‘日使來衛’ 御書의 위조와 경위. in: 고종시대 재조명", pp.165~190 (2000), 태학사
  42. 조성윤, "개항 직후 대원군파의 쿠데타 시도. in: 한국근대정치사연구", pp.97~118 (1985)
  43. 조성윤, "임오군란에 관한 연구 현황과 과제", 한국사론, 25, pp.103~136 (1995)
  44. 최준, "을미망명자의 나환 문제", 백산학보, 8, pp.157~193 (1970)
  45. 한철호, "갑오개혁주도세력의 현실 대응론", 한국근현대사연구, 11, pp.168~196 (1999)
  46. 한철호, "갑오개혁의 성격", 동양학, 30, pp.213~264 (2000)
  47. 현광호, "대한제국기 망명자문제의 정치·외교적 성격", 사학연구, 58, pp.1035~1066 (1999)
  48. 홍순민, "조선후기 왕실 구성과 선원록", 한국문화, 11, pp.169~203 (1990),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49. 홍순민, "19세기 왕위 계승과정과 정통성", 국사관논총, 40, pp.31~56 (1992)
  50. 中塚明, "歷史의 僞造. in: 竹堂李炫熙敎授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 pp.1071~1084 (1997), 동방도서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