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자료로 본 변한의 대외교류
External Exchange of Byeonhan(弁韓) through Foreign Re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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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변한지역에서 출토된 외래계 유물을 집성하여 변한의 대외교류상을 살펴보고자 한 논문이다. 외래계 유물을 중국계와 왜계, 토기와 금속기로 나누어 집성하였는데, 낙랑군 설치 직후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 후반까지의 시간을 대상으로 하였다. 변한지역에서 출토된 외래계 유물은 낙랑군(BC108) 설치 이후 중국계 유물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漢式 위세품에 대한 변한인의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변한인은 수입과 모방을 통해 그 갈망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목관묘에서 목곽묘 사회로 전환되면서 한식유물에 대한 가치와 수요가 변화·감소하게 되었고, 위세품도 재지화되고 독자적으로 변용된 것이 나타났다. 기원전 1세기, 한반도 남부 최대의 한중일 교역 거점이었던 늑도는 기원후가 되면서 교역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김해지역이 각광받기 시작하는데, 양동리·대성동 고분군이 대표적이다. 특히 倭系유물의 기종과 분포의 변화는 정치체 간 교역의 성격이 짙어졌음을 의미한다. 무덤에서 드러나는 변한의 모습은 정치권력형 왕조사회로의 지향을 보여준다. 변한에서 가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물질자료의 변화는 목관묘에서 목곽묘로의 묘제 및 부장품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변한 소국들의 사회 구조 및 수장의 성격, 정체성의 변화와도 연결되는데, 외래계 유물에서 나타나는 한중일 교역 네트워크의 변화와도 연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Abstract
This paper is intended to collect foreign relics excavated from Byeonhan area and examine Byeonhan's foreign exchange. Foreign relics were divided into Chinese(Han(漢)) and Japanese(Wa(倭)). It was targeted from the 1st century B.C. to the 3rd century A.D. In the process of transitioning from Byeonhan(弁韓) to Gaya(加耶), I wanted to find out what Byeonhan's changes in foreign exchange meant. In Byeonhan, relics from Han(漢) Dynasty stood out after the establishment of Nangnang(樂浪; B.C.108), which stemmed from the desire of Byeonhan people for prestige goods. Byeonhan people realized the yearning through income and imitation. However, the transition of society from wooden coffin tombs to wooden chamber tombs changed the value of relics from Han Dynasty, and the prestige goods have also been localized and independent changes have occurred. In other words, the culture of Han dynasty collapsed and the prestige goods have changed amid the inherent development of Byeonhan. In the 1st century B.C., Neuk-do site, the largest trading hub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lost its function of trade in the becaming A.D. At the same time, Gimhae area stood out, representing Yangdong-ri site, and Daeseong-dong site. In particular, changes in the kind and distribution of relics from Wa indicate that trade between polity has intensified. The appearance of Byeonhan in the tomb shows that they were aiming for a political power-type dynastic society. Changes in foreign relics mean changes in foreign exchange in Byeonhan, which are unrelated to changes in social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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