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과 그 후의 기록 『심양장계(瀋陽狀啓)』
Byungja Manchu War and Shimyang-jang-ge (Letters from Shim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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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636년 청(淸)의 침입으로 일어난 병자호란(丙子胡亂)에서 조선은 남한산성에서의 2달간의 항거 후 무력한 항복을 하고 말았다. 패전 후 청(淸)의 요구사항에 의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신하들이 중국 심양(瀋陽)에 인질로 끌려갔으니, 당시 왕자 일행이 심양에서 8년간 조선으로 보냈던 보고서가 『심양장계(瀋陽狀啓)』이다. 이 『심양장계』에는 전쟁 후 조선 조정과 청 사이에 있었던 민감한 외교문제들과 패전국 왕자들이 겪었던 각종 어려움이 잘 기록되어 있다. 당시 왕자들은 포로 속환(贖還), 경제난, 청의 왕실 행사와 전쟁에의 동원 등으로 많은 고초를 겪으며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였다. 한편 엄청난 수의 조선 백성들이 청국으로 끌려가 노예가 되고, 또한 전쟁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어, 패전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Abstract
In 1636, the Manchu War was happened due to the invasion of Qing Dynasty. It was ended at Namhan mountain fortress with powerless surrender after two months of resistance. After defeated, Crown Prince Sohyeon and some retainers were hunted to Shenyang in China as hostages. They Crown Prince’s group sent reports to Joseon for eight years which is call Shimyang-jang-ge(Letters from Shimyang). These reports are well recorded with many diplomatic problems between Joseon government and Qing and difficulties that the princes of defeated country had to face after the war. The princes were suffered from being war hostages, economic crisis, and mobilizing to royal events and wars of Qing Dynasty. Moreover, a great numbers of Joseon citizens were conscripted for slavery labor and wars which evidently showed the price of be defeated in a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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