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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전국농악경연대회’ 출전과 농악인 ‘개인’들의 규합 - 전북의 사례를 중심으로 -

Participation in the ‘National Nongak Competition’ and the gathering of Nongak people 'individual'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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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20세기 농악 분야에서는, 신분의 한계를 벗어난 자율적인 존재로서 권리를 추구하고 개성을 발현하는 공연자 ‘개인’을 찾아볼 수 있다. 해방 후 1946년과 1947년 미군정의 후원 아래 개최된 ‘전국농악경연대회’는 농악의 역사에서 신기원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이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한 전북 대표팀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며 활동 범위를 확장하였고, 농악인 개인들은 명인으로 추앙되었고 대중적인 ‘스타’로서 인기를 누렸다. 좌우 이념의 대립과 6.25의 발발로 이러한 호황은 금방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은 전북 농악의 연예적인 특성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공연자가 독연(獨演)하는 ‘개인놀이’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해방기 1·2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의 전북팀 우승은 현재의 농악 현장에서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신화적인 사건이었다.

Abstract

In the field of Nongak in the 20th century, performers as 'individuals' who pursued rights and expressed their individuality as autonomous beings beyond the limits of their status could be observed. The 'National Nongak Competition', held in 1946 and 1947 under the sponsorship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after liberation, was a new event in the history of Nongak. The Jeonbuk national team, which won the competition for two consecutive years, expanded its scope of activities by gaining nationwide fame, and Nongak individuals were revered as masters and enjoyed popularity as popular 'stars'. With conflict between left and right ideologies and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his boom quickly ended. However, this event served as an opportunity to further strengthen the entertainment characteristics of Jeonbuk Nongak, and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individual play' in which a performer performs solo. The victories of the Jeonbuk team in the 1st and 2nd National Nongak Competitions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were legendary events that are still being talked about in the current field of Non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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