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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宗初 金自點 제거 과정과 효종의 정통성 문제

The process of purging Kim Ja-jeom and legitimacy issues in the early days of King Hyojong’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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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孝宗(r.1649~1659)은 ‘병자호란’ 이후 무너진 국가 질서를 재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국가 재건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에 효종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효종 즉위 직후 김자점에 대한 탄핵 여론이 들끓었는데, 이는 仁祖(r.1623~1649)의 정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된 결과였다. 김자점은 인조의 부정적인 정치 유산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당시 대다수 士類의 公敵과 다름없었다. 효종으로서 집권 초기 김자점을 제거한다면, 사류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효종 자신이 인조의 주도 아래전개된 정치 파동의 결과 왕위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김자점은 효종의 정통성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강빈 옥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효종은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비하여 김자점을 처분해야 했다. 효종은 ‘公論의 수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김자점을 축출했지만, 김자점을 명목상선왕 인조의 功臣으로 남겨두었다. 이를 통해 김자점 처분 논의가 인조 연간의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1650년 사문사 파동의 결과 김자점에 대한 효종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자점이 청나라를 끌어들여 조선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는 풍문에 기초해 대다수 여론이 김자점을 역적으로 규정했으며, 효종 역시 김자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처벌 요구를 사실상 방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효종은 1651년 12월에 김자점을 대역죄로 다스렸다. 이과정에서 효종은 김자점을 극악무도한 역신으로 몰아세우면서도, 그가 선왕 인조의 공신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효종의 양면적인 태도는 ‘역적 김자점’이라는 프레임이 선왕 인조 대로 소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효종의 바람과 달리 ‘역적 김자점’이라는 프레임에 기초해 강빈 옥사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나아가 강빈을 伸冤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다. 김자점을 처분한 후 효종은 자신의 정통성 문제와 얽혀있었던 강빈 옥사가 다시 들추어지는 상황에 대하여 비상한 조치가 필요했다. 1654년 ‘김홍욱 옥사’는 강빈옥사에 관한 再論을 주장할 시 逆黨으로 규정해 처분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다. 이를 통해 효종은 자신의 정통성을 위협할만한 논의를 수면 아래로 한동안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하지만, 효종의 언론관은 대다수 신료의 비판에 직면했으며, 정통성에 관한 시비 역시 언제든지 수면 위로 올라올 여지를 남겼다.

Abstract

King Hyojong(孝宗, r.1649~1659) ascended the throne with the task of rebuilding the collapsed national order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However, the situation facing King Hyojong meant it would be difficult to carry out the task of rebuilding the nation. As soon as King Hyojong ascended the throne, public opinion of impeachment against Kim Ja-jeom (金自點) was aroused, which was the result of calls to liquidate the political legacy of King Injo (r.1623-1649). Kim Ja-jeom symbolized Injo’s negative political legacy, he was no different from the public enemy of Saryu(士類). If Hyojong had eliminated Kim Ja-jeom at the beginning of his reign, he could have received the support of a Saryu. However, the problem was that Hyojong ascended to the throne because of the political upheaval that occurred under the leadership of Injo. Kim Ja-jeom was at the center of the “Crown-princess Kang(姜嬪)’s Oksa," which was directly or indirectly connected to Hyojong's legitimacy problem. For that reason Hyojong had to remove Kim Ja-jeom in preparation for the number of various cases in consideration of political repercussions. Hyojong ousted Kim Ja-jeom under the pretext of 'acceptance of public opinion(公論)'. but nominally left him as a contributor to the late Injo. This act prevented the discussions about impeaching Kim Ja-jeom from turning into a political issue during Injo’s reign. However, in the early 1650s, the rumor that Kim Ja-jeom attracted the Qing Dynasty and put Joseon at risk changed Hyojong's perception of Kim Ja-jeom. With the majority of public opinion branding Kim Ja-jeom as a rebel, Hyojong also appeared to be aiding and abetting the groundless criticisms and demands for punishment against Kim Ja-jeom. Eventually, in December 1651, Kim Ja-jeom was executed for plotting to commit treason. While dealing with “Kim Ja-jeom‘s Oksa(獄事)”, Hyojong accused the Kim Ja-jeom of being a heinous rebel but revealed that he was a contributor to the Injo. The reason was that Hyojong did not want the “Rebel Kim Ja-jeom” frame to be traced back to Injo’s reign and reexamine the political turmoil. But, contrary to Hyojong’s wishes, there was a possibility that the “Crown-princess Kang‘s Oksa” was manipulated based on the “Rebel Kim Ja-jeom” frame, and further discussions arose about how the grudge of “Crown-princess Kang” should be resolved. Hyojong needed a contingency in case the “Oksa of Crown-princesses Kang,” intertwined with his legitimacy issue, was revealed again. In 1654, the “Kim Hong-wook(金弘 郁)’s Oksa” was an event that officially declared that he could be punished for treason when revisiting future discussions on the “Crown-princess Kang’s Oksa” Through this, discussions that could threaten Hyojong’s legitimacy appeared to have subsided for a while, but Hyojong’s “press view(言論觀)” would be criticized inevitably. Thus, discussions over the legitimacy of Hyojong could be raised at an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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