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宗대 정국변화와 災異 논의의 활용
A Study on the Political Situation Change of Rein of King Hyo-jong(孝宗) and its Application to Discuss Zaiyi(災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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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宗(재위 : 1649~1659)은 호란의 피해를 수습하고, 국가를 재정비하고자 노력하였다. 17세기는 소빙기로 인해 자연재해가 잦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효종대 역시 자연재해의 발생이 정국의 다양한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효종대 災異 기록의 빈도를 『孝宗實錄』과 『承政院日記』를 통해 확인해보면 효종 3년과 8년에 집중되며, 6년에는 비교적 줄어들었다. 조선 후기에는 ‘상징적인 재이’보다 ‘현실적인 재이’가 더욱 중요해졌는데, 과학의 발달로 인해 ‘상징적인 재이’가 더 이상 권력을 상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재이’는 다양한 정책을 실현시키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반대로 정책을 반대하는 역할도 하였다. 효종은 인조대 후반부터 이어진 재이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을 활성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求言敎書를 자주 내리거나, 신료들에게 응지상소를 올리도록 촉구하였으며, 직접 祈雨祭에 참여하고자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효종대 재이 논의는 활발해졌다. 그러나 효종 5년, 金弘郁 옥사의 발발로 다소 잘 이루어졌던 재이 논의가 침체되었다. 효종의 정통성과 관계되는 이 사건은, 그것이 벌을 주어서는 안 되는 ‘應旨上疏’에 벌을 내렸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효종은 대신은 물론 공론을 중시하는 산림들과도 갈등을 빚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효종은 꾸준히 자신의 명분이자 大義인 北伐論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벌이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고, 신료들은 이것을 분명한 명분을 통해 저지해야만했다. 그 명분 중 하나가 ‘재이의 발생’이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북벌을 시행할 수 없다는 함의에서 출발하였으며, 이러한 정책들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기 즉, 재이의 발생이나 민폐가 제시될 수밖에 없었다. 재이 논의로 인한 북벌론의 좌절은 재이 논의를 통한 공론의 회복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Abstract
King Hyo-jong (孝宗, 1649-1659) tried to recover from the damage caused by the Manchu war of 1636 of and reorganize the country. It is known that natural disasters occurred frequently in the 17th century due to the ice age. And Reign of King Hyo-jong's occurrence of natural diststers also affected various parts of the political world. When analyzing the frequency of King Hyojong's records[孝宗實錄] through the log and The Diaries of the Royal Secretariat[承政院日記], The frequency of natural disasters`s records increased in 1652(孝宗 3) and 1657(孝宗 8), and decreased in 1655(孝宗 6). This reflects changes in the political situa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朝鮮], realistic Zaiyi(災異, the natural disasters of the traditional era) became more important than symbolic, as the development of science stopped symbolic Zaiyi from representing power. Realistic Zaiyi also influenced the implementation of various policies, but he also played a role in opposing the policy. The incident, which relates to King Hyo-jong`s legitimacy, was a problem because the material punished a 'Eng-gi-sang-so(應旨上疏)' that should not be punished. This caused King Hyo-jong to conflict not only with the deities but also with the San-lim(山林). In this atmosphere, King Hyo-jong consistently argued The policy`s Subjugate the North(北伐論). But it was impossible to realize that The policy`s Subjugate the North was realistically, and the subjects had to stop it for a clear reason. One of the causes was the occurrence of Zaiyi. In Confucian society, the occurrence of Zaiyi was understood to be directly related to the depravity of the ruler, and the realistic damage of the Zaiyi was a big problem for Joseon Dynasty, which was an agrarian society. The subjects argued that policy cannot be implemented due to the occurrence of the Zaiyi, and that violent policy enforcement causes Zai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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