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어제시 연구
A Study on the King's Poetry by King Se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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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세조(世祖) 이전의 조선 군주는 거의 시를 짓지 않았으나 세조를 기점으로 후대의 군주가 상당수의 어제(御製)를 창작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시를 정치적목적으로 활용한 세조의 시인식과 창작 양상은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에게계승되었으며 영조(英祖)·정조(正祖)에게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된다. 세조의 어제시는 열성어제(列聖御製)에 50여 수가 수록되어 있으나 본격적인연구는 이루어진 바 없다. 본 연구에서는 세조의 시인식과 시세계를 검토하였다. 세조는 시를 통하여 신하들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세조가 ‘시언지(詩言志)’에주목한 시초는 신하의 직언이 왕권을 약화시킨다고 인식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시를 통해 넌지시 간하던 시경(詩經)시대의 정신을 창화시의 실제적인 창작을 통해 구현하려 하였다. 또 시악(詩樂)을 통해 정치의 득실을 파악하고 풍속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로 악부(樂府) 창작을 주도하였다. 세조는 천자(天子)인 단군(檀君)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조선 중심의천하 질서 구축을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군신의 동지적 유대를 중시하여 공신을우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어제시를 내리며 각별한 정을 보인 인간적 친근미는후대에도 인구에 회자되며 칭송되었다. 군신 간의 공고한 관계를 권력 기반으로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한 세조는 자신의 지배 영역을 무경계로 확장하고자 하였다.세조는 그 이상을 호월일가(胡越一家)라는 시 제목으로 암시하였는데, 무경계의영토를 향한 일념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서 얻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 우주에어떤 경계도 없다는 형이상학적 비밀을 세조가 설한 바 있다. 불교를 매개로 천하를 통합하고자 한 세조는 호불주(好佛主)로 자처하며 민심의 귀의를 받고자 했고,천명(天命)을 설명한 주역(周易)을 활용하여 충심을 유발하려 하였다. 신민의교화를 목적으로 세조는 유불(儒佛)을 치도(治道)로 인정하였다.
Abstract
50 works of King Sejo's poems are recorded in Yeolseong Eoje(列聖御製) but any examination of the King Sejo's literature hasn't been performed. This study analyzed his recognition and view of poetry. King Sejo often conferred King's poems as a symbol of special blessing for the formation of close relationship with worthy retainers as well as pursue for a method to reinforce the sovereignty in the relationship with the worthy retainers. He realized that the core assignment of the ruling reason was to prevent unexpected upheaval so that he put his efforts for the military government. During the course, the Joseon Dynasty found the identity of the descendent of Dangun, a son of Heaven and had a worldview focused on Joseon to dream Ho Wolilga(胡越一家). King Sejo as a conqueror king as well as a king who likes Buddhism in order to enlighten the people concentrated on the Buddhism propagation and emphasized the Book of Changes for the purpose of enlightenment of the bureaucrats as Confucians. He acknowledged not only Buddhism but also Confucianism for enlightenment of the governing class and the ruled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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