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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연의>에 보이는 국가제사

Research Of The National Sacrificial rites in Hong BumYeon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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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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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연의』는 이현일이 1688년(숙종 14)에 완성시킨『서경書經』의 홍범편洪範篇을 해설한 책이다. 원래 그의 형인 이휘일李徽逸과 더불어 편찬, 간행을 시작했으나 그가 죽자 나머지는 이현일李玄逸이 28권 13책으로 완성하였다. 이 책에 국가의례에 관련된 내용은 권 5~12까지의 8권이다. 『홍범연의』에서는 천지와 인귀의 상당수의 귀신들을 제사하였는데, 그 내용들은 고려, 조선시대와 달랐다. 이것은 양자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러 중요시 여기는 제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홍범연의』에서 천자는 천지에 제사를 드린다며 상제上帝에게 드리는 제례를 희생과 폐백들을 중심으로 설명하였고, 특히 5제에 대해서는 방위색을 각각 설명하였다. 이 제도는 천자의 제도로 고려시대와 조선초기 세조대까지는 시행되었지만 세조 이후 폐지되어 대한제국 설립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지 못하였다. 땅에 대해서는 지기地祇에게 드리는 제사를 방택方澤과 지기地祇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고, 사직제는 천자에게 드리는 태사太社와 왕사王社, 제후에게 드리는 국사國社, 후사侯社 등으로 구분하여 그에 대한 희생과 제단의 규모 등을 설명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천자가 드리는 태사, 태직의 체제로 운영하였지만 반대로 조선시대에는 국사·국직으로 운영하였고, 제단의 규모도 천자의 반분을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계산할 때 영조척營造尺으로 하여 그 크기는 천자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나머지 명산대천, 오악, 사독 등과 같은 땅에 대한 제사나 마조, 마보 등과 같은 말과 관련된 제사는 고려시대 이후 제사를 드렸지만 대사大蜡와 같은 8가지 제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종묘 제사는 천자는 7묘, 제후의 5묘라는 원칙하에 소묘昭廟, 목묘穆廟, 세실世室, 조묘祧廟 등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천자묘는 7묘로 시조와 더불어 3개의 소묘, 3개의 목묘로 구성되고, 제후는 천자에게 책봉된 태조와 더불어 소묘 2과 목묘 2의 5묘가 구성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왕과 무왕과 같이 친진이 되지만 훼철되지 않은 신주를 세실로 지정하여 7묘와 더불어 9묘(천자)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주나라의 종묘는 도궁都宮안에 태조와 2소, 2목을 각각 두어 3개 묘(실제로 5묘)로 구성되고 각각 남향으로, 문당門堂과 침실寢室이 있으며 4면을 담장이 두른다는 주자의 학설을 내세웠다. 그런데 한의 명제 때부터 서상西上을 전제로 한 동당이실同堂異室이라는 하나의 긴 건물로 바뀌었고, 이후에도 이 제도를 본받아 현재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상의 종묘제는 당대에 들여왔던 종묘제를 본받은 고려시대부터 동당이실제로 시행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 이를 주희의 이상대로 주나라의 방식으로 고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였다. 종묘제사는 봄에 약礿, 여름에 체禘, 가을에 상嘗, 겨울에 증제烝祭를 지냈다. 이중 협은 합친다는 뜻이고 체는 살핀다는 뜻으로 천자는 3년에 1번 협제祫祭를 지내고 5년에 1번 체제禘祭를 지내 자신의 선조를 배향하였다. 그런데 고려에서는 천자의 예를 사용하여 체제와 협제를 모두 시향時享과 더불어 시행했지만 조선에서는 태종과 세종대 종묘에 협제의 의식을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체제가 천자의 의식이고 협제는 영녕전의 신위와 종묘의 신위가 같이 제사를 받은 경우가 없어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같이 『홍범연의』는 천자, 제후라는 입장과 시대적인 차이를 가지고 조선시대와 다르게 운영되었는데, 한편으로 의식상에서도 상당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홍범연의』에는 제사의 기일忌日을 10일 즉 산재散齋 7일과 치재致齋 3일로 잡았지만 고려·조선시대에는 재계를 7일 이하로 삼았다. 또한 제사 시행과정에서 왕이 희생犧牲을 끌고 나오거나 난도로 희생을 베는 행동, 직접 춤을 추는 등의 과정을 『홍범연의』에서는 설정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후기에 희생을 살펴보는 의례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왕이 전담하지 않았다. 또한 『홍범연의』에서는 여성들의 제사 참여를 적극적으로 묘사한 반면 고려·조선시대에는 그러한 여성의 역할이 없었고, 또한 신위를 대신하여 앉히던 시동尸童을 고려·조선시대에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Abstract

This Study is intended to examine the contents of the national Sacrificial rites in Lee Hyun-il and Lee Hyun-il's "HongBumYeonUi(洪範衍義)"(1688), which commented on the 'Hong Bum' of the “SeoKyung(書經)”. "HongBumYeonUi" was written to reveal the political ideas of the ancient Chinese Qing Dynasty, and there are a fair amount about the national rituals. The sacrifice described in "HongBumYeonUi" is Hocheon Sangje(昊天上帝) and Oze(五帝), which are heavenly sacrifices by Emperor. And there were Gigi(地祇) Sajik(사직) and Myeongsan Daecheon(명산대천), Oak(오악), and Sadok(사독). All of these sacrifices were the subjects that raised the authority of the Emperor and the rest of them could never offer sacrifices. Those who became ghosts as human beings emphasized the Jongmyo(宗廟) and Munmyo(文廟). In particular, the fact that the form of the old Jongmyo, which was performed in the Qing Dynasty, was different from the present one, was explained in detail according to the theory of Juhee(朱熹). The national ceremony of "HongBumYeonUi" came to our country and changed considerably. In the Goryeo Dynasty, there were many similarities to the contents of "HongBumYeonUi" because it was an a son of Heaven-nation, but Joseon Dynasty was very different because it showed the position of the feudal lords. In particular, the Jaigae(齋戒) of the sacrifice was reduced from 10 days to 7 days, And there was no scene of the king cutting the sacrifice with a knife, no dancing by the king himself, no role for the woman in the ceremony, and no mention of the Sidong(尸童).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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