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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盈德지역 무안박씨務安朴氏 가학家學의 전승과 양상

The Transmission of Family Study and Its Patterns in the Park Family of Muan in the Yeongdeok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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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논문은 영덕군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무안박씨 가문의 가학의 전승양상을 살피고, 그 특징을 밝히고자 한 글이다. 무안박씨가 영덕지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5세기 말 박지몽이 영해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번성한자손들이 족세族勢를 확장시켜 나갔다. 가문의 위상이 정립된 것은 입향조이후 8대 약 200여 년간으로서 시기적으로는 16세기 중엽에서 18세기 중엽에 해당된다. 이 글에서는 박지몽의 다섯 아들 중 영해지역에 기반을 두고 번성한 장자계열과 삼남 계열을 중심으로 하여 가학의 전승 과정에서 드러나는 양상을살폈다. 그 과정에서 도출된 무안박씨 가학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무안박씨의 가학은 소안동이라고 불린 영해지역을 중심으로 하고있었다는 점이다.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갖춘 사족 가문들이 안동지역에 비견될만큼 많이 모여 사는 영해의 핵심적인 일원이었던 것이다. 둘째, 문무를 겸전하였다는 점이다. 무예에서 출발하여 문한으로 번성한 가문은 그리 흔한 경우가아니며, 그 점에서 이 가문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충절을 실천하는 가풍을 지녔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때는 무반 관료로서 맡은 바 책무를 충실히 실천하였으며, 일제의강점기에는 의병을 일으키거나 독립운동에 투신함으로써 가풍을 이어갔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transmission patterns and characteristics of family study in the Park family of Muan, who prospered around the Yeongdeok-gun area. It was in the late 15th century when Park Ji-mong settled in Yeonghae that the Park family of Muan started to make connections with the Yeongdeok area. Since then, his descendents expanded the power of their family through prosperity. The status of the family has been established for approximately 200 years over eight generations since Park Ji-mong between the mid-16th c entury and t he m id-1 8th century. This study examined the transmission patterns of their family study with a focus on the lines of Park Ji-mong’s first and third son that prospered around the Yeonghae area in its transmission process, which led to the three following characteristics of their family study: First, the family study of the Muan Park family focused on the Yeonghae area called Little Andong. The family was one of the core members of Yeonghae, whose gentry families, armed with remarkable academic refinement, were as many as those in Andong. Secondly, the family was perfect in both literary and martial arts. It is not a common case that a family would prosper in literary arts after making a start in martial arts, which clearly reveals the nature of the family. Finally, the tradition of the family was to serve the nation with loyalty in a national crisis. This tradition of the family was preserved as they fully performed their duties as military officials during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raised an army for justice and were devoted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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