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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문경聞慶의 의병義兵 활동과 지역의 동향動向

Activities of righteous army in Mungyeong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rends of th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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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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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예로부터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관문이었다. 근대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문경은 교통의 요지로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문경은 삼국시대에 신라 국경의 전략요충지였고, 후삼국 시기에 왕건과 견훤이 후삼국 통일을 두고 쟁패를 벌였던 곳이었다. 문경은 소백산맥을 둘러싸여 있고 험준한 곳이 많은데,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희양산석성曦陽山石城이 축성되기도 했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는 연해 지방을 지속적으로 침입하였다. 조선은 왜구에 대비하여 군비를 확충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회유책도 병행하였다. 이후 왜구는 무역업자로 변모하여 조선에 들어왔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이 육로와 수로로 병행하여 도성으로 상경하였고 그 수도 매우 많았다. 조선 조정은 이들의 통행을 제한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조선 조정은 일본과의 무역항을 제포·부산 포·염포로 제한하고 상경로를 지정하였다. 문경은 조선의 상경로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일본인이 한성漢城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해 있었다. 문경은 접근성接近性과 격절성隔絶性이라는 지리적·전략적 특 성을 모두 지닌 곳이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문경은 교통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고려 말 왜구의 피해를 겪으면서 연해와 내지 방어할 수 있는 이원적인 군사체제인 익군 체제를 실시했다. 익군 체제는 내지방어를 위한 도道와 연해안에 설치되었던 진鎭을 통합한 이원적 지방 방어 체제였다. 이에 따라 문경은 함창과 함께 상주도의 우익으로 편성되었다. 문경은 충주도의 중익인 충주와 연풍과 인접한 곳으로 경상우도와 충청도 내지 방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후 세조는 익군체제를 진관체제로 개편하였다. 지방 군사 체제를 진관체제로 개편한 것은 이원적 군사 체제를 일원화한 것이었다. 진관체제 속에서 문경은 상주진에 편입되었고, 문경현감은 행정권과 군사권을 겸하게 되었 다. 진관체제의 실시로 상주진에 편입된 제진諸鎭의 군사적 독자성은 강화되었다. 이후 남방 왜인들의 침입 경로와 수단이 일정화되고, 진관체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조선 조정은 진관체제를 제승방략 체제로 변경하였다. 제승방략 으로 군사 체제를 개편함에 따라 제진의 수령들은 군사를 인솔할 뿐이었고, 중앙 에서 파견된 경장京將의 지휘를 따라야만 했다. 이처험 제승방략은 체제 하에서 지방 수령들의 군사 지휘권은 약화되었고, 제진의 독자성은 상실되었다. 임진왜란 이 발발하자 문경 이하의 수령들은 제진의 군사들을 이끌고 대구에 집결해야 했을 뿐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일본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제2군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군대는 문경에서 합세하였고, 이후 문경은 후속 일본군의 군사적 거점이 되었다. 1592년 8월 문경 사족들은 의병 연합 부대를 형성하고 조직을 갖추어 나갔다. 이들은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과 곽재우·김면 등과 교류 하면서 문경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매복과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593년 5월 이후 명군이 남하하여 문경의 당교에 주둔하였다. 이후 문경은 일본군의 재북상을 차단할 수 있는 군사적 거점으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즉 문경 방어를 통해 일본군의 충주로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 었다. 문경의 의병 부대는 문경을 거점으로 일본군이 주둔한 상주성을 공격하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문경의 의병 부대는 경상우도의 방위 활동뿐 만 아니라 경상 좌도에서도 관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을 격퇴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가 크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Before modern times, Mungyeong (聞慶) was a very important area. Mungyeong was an important border point in Silla (新羅). In addition, Wanggeon(王建)’s portrait was kept at the temple in Mungyeong. Mungyeong was a place with both accessibility and isolation. Although Mungyeong is surrounded by rugged Sobaek Mountains, it is possible to access Chungcheong-do directly through certain hills. These geographical features of Mungyeong have very important military implications. During the Joseon Dynasty, Mungyeong was not only a bridgehead connecting Gyeongsang-do and Chungcheong-do, but also a very im- portant military hub for the inner defense of Gyeongsang-do and Gyeongsang-Jwa-do. Joseon authorities established a Jingwan cheje (鎭管體制) to defend the sea and land. Under such a military system, Mungyeong became a very important place for inland defense. In addition, Moon Gyeong-hyeongams military command was increased. However, the existing military system failed to function properly and was reor- ganized into a Jeseung bangnyak cheje(制勝方略體制). This reorganization of the military system reduced Mungyeong’s military role.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ungyeong was an important northward route for the Japanese army and a base for the rear troops. The Mungyeong Sajok(士族) raised righteous army against the Japanese army. They formed an allied force, formed an organization, and defeated the Japanese army. They worked closely with other righteous army leaders in Gyeongsang-do to carry out righteous army activities. They engaged in righteous army activities across Gyeongsangu-do and Gyeongsangjwa-do. Meanwhile, records of the righteous army generals who were active in the Mungyeong area were excavated. This record illustrates the activities of righteous army in the Mungyeong area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is expected that the excavation of these materials will further expand the scope of research o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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