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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봉화 지역의 의병활동과 일본군의 동향

Righteous Army in Bonghwa area and the activities of the Japanese Army during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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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임진왜란이 시작된 지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인 1592년 7월 말, 봉화의 소천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전투는 유종개 등이 이끄는 조선 의병이 2천~3천여의 일본군과 싸워 분패한 사건이다. 본 연구에서는 봉화지역 의병활동과 일본군의 동향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는 좁게는 봉화 소천 전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며, 넓게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전체 역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와 경상도 북부를 공격한 일본군은 제4군에 속했던 모리 요시나리였다. 그는 강원도와 경상도 북부를 거치며 그는 ‘회유’와 공격을 병행하며 담당 지역의 실질적 지배를 꾀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지역 지배에 성공하지 못했다. 조선인들은 일본군 지배지역에서 도망치거나 저항했으며, 모리 요시나리는 폭력을 행사하여 이를 제압하고자 했다. ‘회유’를 통해 조선인을 모아 조세를 걷고 장기 지배체제를 만들고자 한 그의 의도는 실패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지 지배를 포기하고 일본군 본진이 있는 한성으로 퇴각했다. 봉화를 비롯한 경상도 북부의 조선 의병은 비록 전투에 패하기도 하였으나, 의병을 결성한 초기부터 일본군에 실질적,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이는 명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이전부터 일본군의 전의를 크게 떨어트리는 역할을 하였다.

Abstract

At the end of July 1592, about four months after the start of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there was a battle in Socheon area of ??Bonghwa. This study pays attention to this battle. This battle was a case in which the Joseon soldiers led by Yu Jonggae fought with 2,000 to 3,000 Japanese soldiers. This study focuses on the Japanese who fought against them. This is not only necessary for understanding the Bonghwa Socheon battle, but also necessary for understanding the whole history of Imjin War. Mori Yoshinari, who belonged to the fourth unit of the Japanese army, went to Gangwon Province where he decided to take charge. Throughout Gangwon Province and North Gyeongsang Province, he worked with ‘carrot and stick’ to control the area in charge. But he did not succeed in domination. As anyone can see from the documents he issued, the Joseon people did not cooperate and ran away. It can be seen that the area where he propagated his success was actually in failure according to the Joseon’s historical records. As a result, they did not leave any troops in the area. This means that local control has failed. Although the soldiers of Joseon were defeated in battles, they practically and psychologically oppressed the Japanese military from the beginning, and this played a role in reducing the will of the Japanese military before the Ming’s army entered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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