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본 <서의書儀>의 간행과 그 예학사적 의미
The Publication of Shuyi in the Chosun Dynasty and its Historical Meaning in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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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사마광司馬光의 <서의>는 <가례家禮>의 토대가 된 예서로서 잘 알려져 있었지만, 18세기 중반까지 조선에 전래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로인해 서의는 가례와 가례의절家禮儀節 등에 인용된 방식에 따라 인식되고 재인용되었다. 서의는 속례와 소략함으로 대표되었고, 가례가 고례와 다른 부분은 서의를 따랐기 때문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했다. 18세기 중엽 홍계희洪啓禧가 북경에서 1723년 재간행된 서의를 들여왔고, 조선 학자들의 교정을 거쳐 1767년에 조선본 서의가 간행되었다. 조선본 서의의 존재는 그동안 학계에 소개되지 못했지만, 서의 판본 연구에서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홍계희의 발문에 의하면, 서의의 간행은 족질인 홍양해와 그 친우인 김응순에 의해 이루어졌다. 홍계희는 가례를 공부하는 후학들이 서의를 얻은 이후에야 주자가 가례를 절충하고 취사한 명확한 기준을 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의가 간행된 이후 서의를 직접 고찰하고 연구하면서 조선 예학의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졌다. 먼저 서의를 통한 가례 이해의 심화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가례의 불분명한 조목들에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냈다. 주관主冠과 주혼主昏의 문제, ‘독필회지讀畢懷之’와 수조受胙시 재배再拜에 관한 논쟁 등에서 서의를 통한 명확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또한 서의를 근거로 기존 예설에 대한 비판적접근이 시도되었다. 늑백勒帛을 행전으로 보는 가례의절과 김장생의 예설을 비판하고, 서의를 잘못 인용했던 오류를 바로잡는 연구들이진행되었다. 가례가 고례와 다르거나 불충분한 부분들을 모두 서의 의 잘못으로 간주하는 고정관념이 변화하면서 가례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접근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Abstract
Shuyi was often quoted as the basic of Jiali, but it was not passed down to Chosun until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Shuyi was recognized and re-quoted according to the methods cited in the chapters on Jiali and Jiali-yijie. Shuyi was represented by the omission, and it was perceived differently from acient ritual. In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Hong Gyehee took Shuyi from Beijing and it was published in chosun 1767, after the correction of Chosun scholars. The existence of the Korean version of the book has not been introduced in the academic world, but it is an important example in the book edition of Shuyi. Since the publication of Shuyi, it has been attempted to directly study of the ritual in chosun. The understanding of Jiali through Shuyi was deepening. A critical approach to the existing tradition was made through Shuyi. So more objective approach to Jiali has become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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