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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 통신사행과 趙絅의 일본 인식에 관한 小考

The study on 1643 Korean Embassy to Japan and Jo Gyeong(趙絅)’s perception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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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는 1643년 癸未사행과 당시 副使로서 사행에 참여했던 趙絅을 초기 통신사의 성격과 함께 당시 조선의 대일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1643년 통신사는 사행단 파견부터가 다른 사행과 달리 순조롭지 않았다. 조선은 병자호란을 당하였고, 중국의 움직임이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으며, 국내적으로는 기근과 질병이 만연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선 조정에서는 대외적 안정을 위하여 일본 幕府 將軍의 후계자 탄생 축하라는 전례 없는 파견 요청을 수락하여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1643년 사행의 정사는 윤순지, 부사는 조경, 종사관은 신유였다. 본고는 1643년 통신사행의 개요와 함께 부사였던 조경의 사행록을 고찰한 것이다. 특히 그는 사행에 파견되기 전에 일본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는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에 가서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본고에서는 조경이 가지고 있던 일본 인식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조경은 일본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일본을 야만시하고 이적시하였다. 그가 일본과 화친할 것을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안위를 위한 외교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조경이라는 개인의 생각은 이와는 달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시대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관심은 許穆과 같은 동료 문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mes the Gyemi(癸未) Korean Embassy to Japan(通信使;Tongsinsa) in 1643 and Jo Gyeong(趙絅)’s the record of the 1643 Korean Embassy to Japan. This aims to study 17th century’s the Korean Embassy to Japan and their perception of Japan, especially Jo Gyeong(趙絅) who he was the bureaucrat. The 1643 Tongsinsa was different from the other Tongsinsa. Firstly, Joseon government had never dispatched a delegation the birth of successor to Tokugawa government(德川幕府). Furthermore the state of Joseon was very serious, Joseon suffered from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korea in 1636(Byongjahoran) and plague. Nonetheless Joeson government decided to send a embassy because of national security. Jo Gyeong(趙絅) previously insisted on amity with Japan, it was unorthodox. Because Japan was thoughted implacable enemies since the two Japanese invasions of Korea. How, then, did he feel Japan after he went to Japan? This paper consider Jo Gyeong(趙絅)’s perception of Japan through his record, Dongsarok(東槎錄). Jo Gyeong(趙絅) virtually scorned Japan as barbaric. The reason he insisted on amity with Japan was for national security. Himself could not accept Japan as a neighbour. However, it does not means he ignored Japan. He was rather interested in Japan, and he collected the information about Japan. And this influenced on his friends such as Heo mok(許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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