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제사상속관습법
The Customary Law on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during th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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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주관 하에 추진된 제사상속관습법의 내용과 조선고등법원의 판결례를 통하여 정립된 제사상속관습법의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적어도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에 발간된 관습조사보고서에서 부터 제사상속은 상속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으며, 舊慣及制度調査委員會 역시 조선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최대중요사로 하고, 제사자인 지위의 상속은 항상 재산의 상속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결의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조선고등법원의 판결 또한 조상 제사권을 법률상 신분권의 일종으로 인정하였으며, 종손권이란 선대가 지녔던 호주권과 재산권 및 門祖祭祀權을 포괄하여 상속하는 신분상의 권리라고 판시하였던 점도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상속관습법으로서, 정무총감의 회답 또는 중추원서기관장의 회답 등을 통하여 정립된 상속관습법의 내용에서도 제사상속은 상속의 기본적인 형태로서 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제사상속인은 동시에 호주상속과 재산상속을 하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20여년이 경과한 1933년, 조선고등법원은 호주상속과 재산상속제도가 확립된 이상 이제 제사상속이란 선대를 봉양하고 조상의 제사를 봉행하여야 할 도의상의 지위를 승계하는데 불과하다고 판시함으로써 제사상속을 법의 영역에서 축출하게 되었다. 당시 상속관습법의 정립을 주도하였던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조선고등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법률상 권리로서의 제사권이나 종손권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다분히 정책적인 고려가 개입된 것으로서 민족 정서의 반발을 최소화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도 이해된다. 특히 제사상속에 대한 1933년도의 조선고등법원 판결은 1930년대 일본의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로 인한 적극적인 동화정책에 의거하여 전통적인 제례의식의 말살을 기도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Abstract
This paper is about the customary law on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 the early days of Japanese colonial rule(1910), the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were said to be the most important of inheritance. Both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High Court of Chosun took the same attitude of placing importance on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The Committee on the survey of old customs resolved that in Chosun,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is the most important, and the inheritance of status as a priest always involves property inheritance. The High Court of Chosun also ruled that the right of ancestral rites was legal. All the institutions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nfirmed that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was the basic form of inheritance and had legal meaning. In 1933, however, the High Court of Chosun ruled that since the succession to house-headship and succession to property was established, the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was merely a succession of moral authority. Eventually, through the judgment, the succession to ancestor-worship was ousted from the realm of law. This is understood as part of a policy of assimilation with Japan. In the 1930s, the domestic situation in Japan was chaotic, so the government pushed forward an active assimilation policy with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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