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 동서문화의 충돌과 민족주의 불교의 발현
The Cultural Conflict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and the Advent of Nationalistic Buddhism in Moder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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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의 시기를 보편적인 학계의 계정에 따라 아편전쟁(1840)으로부터 중국인민공화국의 성립(1949) 전까지로 설정하였다. 淸末부터 중화민국의 성립과 대만 이주로 이어지는 이 시기의 중국은 서구 열강들의 중국 침탈로부터 국가의 내란, 중일전쟁, 이념에 의한 내분 등 내우외환의 정치적, 사회적인 혼란과 사상적으로는 西學의 전래에 따른 문화적 충격으로 극심한 혼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들, 특히 불교계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에 대하여 ‘근대불교의 태동: 楊文會의 민족주의 불교’, ‘근대의 儒佛融合과 佛敎護國論’, ‘불교의 근대교육과 人間佛敎’의 네 분야로 나누어서 고찰하였다. 흔히 ‘중국 근대불교의 아버지’라고 하는 칭해지는 楊文會의 근대불교에 대한 공헌은 대체로 불교전적의 刻印과 보급을 담당하는 ‘金陵刻經處’의 설립과 운영, 金陵刻經處의 내부에 개설하여 불교 敎義에 대한 체계적인 강론을 담당하였던 ‘祗洹精舍’와 그의 死後 제자인 歐陽竟無에 의하여 설립된 ‘支那內學院’, 그리고 불교의 심화연구를 담당하였던 ‘佛學研究會’, 마지막으로 다양한 국제교류의 실행 등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楊文會의 불교사상의 특징은 바로 『大乘起信論』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역대의 모든 불교사상을 융합하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이로부터 楊文會는 철저히 ‘민족주의’적인 불교를 지향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러한 楊文會의 민족주의적 불교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결국 儒佛融合으로부터 佛敎護國論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蔡元培는 1900년에 「佛敎護國論」이라는 글을 발표하는데, 여기에서는 儒佛融合으로부터 護國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佛敎라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佛敎護國論은 당시의 지식인들의 기본적인 사유의 틀이었으며, 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이들이 바로 新儒學者라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新儒家에서의 儒佛融合을 대체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찾았다. 첫째는 불교를 통하여 儒家 사상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삼았다는 점이고, 둘째는 儒家에서 불교의 敎義를 흡수했다는 점, 셋째는 新儒学에서 불교의 唯識學을 흡수하였다는 점이다. 중국의 불교에 있어서 근대교육 역시 楊文會와 깊은 관련이 있다. 楊文會는 祇園精舍를 세워 전문적으로 불교를 강의했지만, 비용의 문제로 2년만에 문을 닫는다. 사실상 중국불교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인가를 받은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은 바로 楊文會의 제자인 歐陽竟無가 세운 支那內學院이라고 하겠다. 지나내학원은 1922년 설립되어 1953년 閉院하기까지 근대로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중국불교학의 한 축을 담당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 意義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지나내학원은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최초의 불교교육기관이다. 둘째, 지나내학원이 배출한 인재는 당시 중국 불교학계를 주도하였으며, 그들의 후예가 현재에도 여전히 불교학계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지나내학원은 금릉각경처와 별도로 刻經을 하여 大藏經을 완간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이외에 지나내학원이 수행한 업적은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가지를 논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근대시기에 중국불교학을 부흥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근대불교의 교육과 관련해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정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廟産興學 운동’이다. ‘廟産興學 운동’은 ‘廟産’ 즉 불교의 사찰이나 도교의 도관 등의 재산을 이용하여 근대식 교육을 일으키자는 운동으로 洋務派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인 張之洞이 1898년 3월에 유명한 『勸學篇』을 上奏함으로써 발생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 실시과정에서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찰의 재산을 탈취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이에 대한 僧家의 반발로서 오히려 불교계의 근대교육이 실현되는 점이 보인다. 그 가운데 특히 僧家에서 廟産興學에 대한 자구책으로 세운 僧學堂(佛學院)은 이후 僧家의 근대교육을 실현하는 효과를 보였고, 이러한 僧學堂 출신의 승려들이 近現代의 중국불교를 이끌었다고 하겠다. 또한 僧學堂의 교육에서 두드러진 경향은 바로 太虛와 印順法師가 창도한 ‘人間佛敎’의 제창이었고, 이러한 人間佛敎의 경향은 현재에도 여전히 中華佛敎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Abstract
This study considers that the modern period of China starts from the Opium War (1840) and ends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1949) according to general academic annals. In this context, the study explores the activities of intellectuals, especially in Buddhist circles in the following areas: the beginning of modern Buddhism, Yang Wen-hui’s nationalistic Buddhism the combination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national protection Buddhism in modern times; and modern Buddhist education and humanistic Buddhism. The distinctive idea of Yang Wen-huicalled a father of modern Chinese Buddhism is to follow nationalistic Buddhism. His nationalistic Buddhism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n intellectuals and they developed fundamental frames of thought for them, which are the combination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national protection Buddhism. In Chinese Buddhism, modern education has a close relation to Yang Wen-hui. The first modern educational institution received state approval is ‘Zhi-na-nei-xue-yuan’ established by Ouyang Jingwu, a disciple of Yang Wen-hui. Established in 1922, the school held a prominent position in Buddhist studies in modern and contemporary China until the closing down in 1953. Regarding education of modern Chinese Buddhism, the important strategy that should never be missed out is a movement called ‘Miao-chan-xing-xue’ that tried to organize modern educational works using assets of Buddhist temples or Taoist temples. However, during its development process, the strategy went to the wrong direction that is takingassets from temples, damaging the original purpose. Modern education became partly settled by the Buddhist circles which resisted the situation. As an alternative plan, the Buddhist academy, Fo-xue-tang, was established and played a role in developing modern education, and monks from the academy led modern and contemporary Chinese Buddhism. The distinctive feature of the academy is to advocate humanistic Buddhism of Taixu and Yinshun, and the idea of humanistic Buddhism is still a mainstream in current Chinese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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