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대 부당 형벌 논란과 형정운영의 변화
Controversy over unjust punishment and changes in penal operations during the reign of Sookjong(肅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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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형사 재판 절차에서 악형(惡刑) 퇴조의 사회적 배경에 주목한 연구이다. 숙종15년(1689) 박태보 추국을 둘러싼 민인과 양반층, 그리고 국가의 상호작용을 검토하여 그러한 초기적 대응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17세기 국왕 숙종이 부당한 형정을 남용한 데에서 비롯된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숙종은 즉위 초기부터 주약신강설(主弱臣强說), 후계미정 문제 등 국왕권을 둘러싼 정치적 압력을 받고있었다. 즉위 이후 오랫동안 후사를 낳지 못하던 숙종은 숙종 14년(1688년) 희빈 장씨로부터 아들을 얻게 되고, 출생 2개월 만에 원자로 정하여 후계를 확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서인들을 축출하고 희빈 장씨에 우호적인 남인을 중심으로 정국을 재편하는 기사환국을 단행하였다. 더 나아가 숙종은 잠재적으로 원자의 정치적 역할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인현왕후도 폐출하여 후계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현왕후 폐비 강행은 서인진영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기사진신소의 소두 박태보에게 각종 불법적이고 혹독한 형문을 가하여 고문치사시켰다. 숙종 15년(1689) 박태보 추국은 숙종의 잔혹한 형벌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사건이었다. 숙종은추국의 명분, 절차, 결과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위법적인 방식으로 자의적인 형정을 집행하였다. 숙종의 잔혹한 형벌로 인하여 박태보는 물고당하였고, 이에 대한 전국 각계각층의 비판이 쇄도하였다. 동시기에 『박태보전』이라는 소설이 만들어져 이러한 잔혹한 장면을 재생산한 결과 ‘부당 형벌’ 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었다. 이제 압슬형, 낙형이라는 악형은 ‘역모죄인을 심문하는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무단적인잔혹성’을 대표하는 표상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형정 운영에는 일정한 변화가 도출되었다. 악형은 자백 유도라는 효용성이 높았지만 물고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이 증가한다면결국 중지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숙종은 조정과 사회의 비판을 고려하여 점차 악형 사용을중지하게 되었고, 형정 운영의 절차적 정당성을 규제하는 형정절차법령을 개정해갔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제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효용보다 제도로부터 야기되는 불이익이 더 커지는 경우, 그리고 이로 인한 불이익이 국가 통치를 저해하는 경우에 해당 제도를 더 이상 국가에게 유리한 통치도구로 여기지 않게 된다. 따라서 조선후기 형사사법 개혁은 18세기 영조 재위기에 정책입안자의 정치적 결단으로 일거에 성취되어진 것이 아닌, 17세기 이래 누적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대응적인 제도개량의 결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he social context of the abolition of torture in late Joseon criminal proceedings. This article examines the interactions between the common people, the Yangban(兩班), and the state surrounding the Chukguk(推鞫) of Park Tae-bo(朴泰輔) in the 15th year of King Sookjong(1689) to identify patterns of initial responses. These phenomena had a political background that stemmed from the 17th-century king Sookjong’s abuse of unjust punishments. From the very beginning of his reign, Sookjong was under political pressure from the Vongdang party over the issue of undecided succession. After being unable to produce an heir for a long time, Sookjong had a son by Heebin Jang(張禧嬪) in the 14th year of Sookjong (1688), and tried to secure his succession by declaring him an successor just two months after his birth. This led to the reorganization of the state based on the Nam-in(南人) by ousting the Seo-in(西人). Furthermore, Sookjong wanted to solidify his succession by abdicating Queen Inhyeon(仁顯王后), who could potentially weigh on the political role of successor. However, his decision to abolish Queen Inhyeon provoked a strong backlash from the Seo-in, and in the process, he subjected Park Tae-bo to various illegal and harsh punishment and tortured him to death. The torture death of Park Tae-bo in the 15th year of Sookjong (1689) was an extreme manifestation of Sookjong’s brutal punishment. Sookjong executed arbitrary punishment in a way that was illegal in terms of its rationale, procedure, and outcome. Park Tae-bo was killed by Sookjong’s brutal punishment, and criticism from all walks of life across the country flooded in. At the same time, a novel 『Park Tae-bo Jeon』 (『朴泰輔傳』) was created to reproduce these brutal scenes and was recognized as a representative case of ‘unjust punishment’. The tortures of Apseul-hyung(壓膝刑) and Nak-hyung(烙刑) are now remembered not as a “useful tool for interrogating treasonous criminals” but as a representation of the “unauthorized cruelty of the state”. The case led to certain changes in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While torture was highly effective in eliciting confessions, it had its limits and would eventually be discontinued if the political and social criticism would be provoked. Sookjong gradually stopped using torture in light of reconciliation and social criticism, and revised the Criminal Procedure Act to regulate the procedural legitimacy of criminal justice operations. Thus, the criminal justice reforms of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not the result of a political decision by policymakers during the 18th-century reign of Youngjo, but rather the result of responsive institutional changes reflecting social demands that had accumulated since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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