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해방기 대구․경북 지역의 연극·영화 운동에 관한 사례 연구 : ‘10월영화공장’ 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Liberal Nationalist ‘Cinema and Theater Movement’ in Daegu During the Time of National Emancipation(1945-1948) : Case Study of October Cinema Factory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신문방송학

초록

이 논문은 부분적이나마 해방기(1945-1948)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 전개한 대구․경북지방 영화․연극운동의 실재를 발굴하고 그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45년 10월 1일 창립되어 해방기 국가 건설기에 민족․국가․민중․향토의 정체성을 심는 한편 정치․경제․문화 담론을 전파한 매체로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전개한 10월영화공장의 궤적을 추적하였다. 10월영화공장은 10월영화뉴스, 문화영화, 계몽영화 제작 등 영화를 미디어로 삼아 조직적으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같은 영화․연극 운동은 지방 도시로서는 대구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처럼 해방기 대구지방의 연극․영화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진보적․민족적 연극․영화인들의 연극․영화가 해방기의 역사성을 이해하고 민족적 메시지를 담아내 민중들의 큰 호응을 받음으로써 가능하였다. 해방기 대구․경북 영화․연극운동 주도세력의 맥은 대구 ‘무대협회’, 대구 ‘가두극장’, ‘코레아영화제작소’, ‘10월영화공장’ 등으로 이어졌다. 해방기 대구의 문화운동 주도세력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수탈․억압당하는 농민과 노동자, 학생을 비롯한 식민지 민중의 삶을 표현한 비흥행적 영화․연극을 개척하였다. 이들이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활동한 경험은 해방기 미군정의 탄압에 합리적․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구․경북의 해방기 영화․연극운동 주도세력들은 이론투쟁보다는 현장에서 민주적 민족국가․민족문화수립 건설운동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역사적 자료 발굴 등을 통해 지금까지 공백으로 남아있던 해방기 대구․경북 진보세력이 펼친 영화․연극 운동의 실체를 확인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define and describe the nature of the liberal nationalist ‘Cinema and Theatre Movement’ in Daegu and the Gyungbuk area during the period of national emancipation(1945-1948) in Korea. There exists virtually no research that traces the trajectory of local ‘Cinema and Theater Movement’ in Korea, especially in regard to the efforts made by liberal political blocs which attempted to achieve independent nation building without outside intervention. The primary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recover and bring light to historical documents including newspaper articles and photos that remain unnoticed in the turmoil of political change in post-war Korean society. To achieve this, rare newspaper articles published in Daegu and Gyungbuk were collected. Through content analysis of newspapers, this research reveals ideological orientations, important actors, and specific activities of liberal political blocs. Local residents who either witnessed or engaged in the Cinema and Theater Movement were also interviewed. Historical documents and interviews revealed the existence of the ‘October Cinema Factory’ which was founded on October 1945 in Daegu․Gyungbuk region. This organization actively engaged in imbuing the identity of the new nation and both national and local values/traditions/cultural practices to the Korea public through street performances and local cinema productions. The ‘October Cinema Factory’ also produced a variety of cinemas for the education and emancipation of the local people. The ‘October Cinema Factory’ was the only local cultural organization that pursued the empowerment of the public as well as the encouragement of political participation by utilizing popular cultural products as its means. The primary contribution of the present study is that it brings to light and confirms the existence of liberal bloc activities for political empowerment of Daegu and Gyungbuk residents, which have not been discussed in previous studies. The study also describes, with considerable historical evidence, the emergence, development, and decline of this movement in rich detail.

참고문헌 (83)

  1. 경북대학교대형과제연구단, "근현대 대구 경북지역 사회변동과 사회운동Ⅰ", pp.0~0 (2005), 정림사
  2. 김영희, "미군정기 농촌주민의 미디어 접촉 양상", 한국언론학보, 49(1), pp.324~348 (2005), 한국언론학회
  3. 김영희, "미군정기 미디어 보급과 미디어 접촉 현상, 광복과 한국 현대언론의 형성", 한국사론, 44, pp.149~197 (2006)
  4. 남인영, "영화, In 한국예술사대계 Ⅰ" (1999), 시공사
  5. 노영택, "일제시기의 문맹률 추이", 국사관논총, 51, pp.109~159 (1994)
  6. 대구예술삼십년사편찬위원회, "대구예술삼십년사" (1993), 대구직할시지회
  7. 박영정, "카프 연극부의 조직변천에 관한 연구", 한국연극연구, pp.83~117 (1998)
  8. 박영정, "연극, In 한국예술사대계 Ⅰ" (1999), 시공사
  9. 백기만, "씨 뿌린 사람들" (1946), 사조사
  10. 이원식, "조국이 부르는 벽 밑에서(옥중수기, 전4책)" (1964)
  11. 이원식, "연보(전1책)", ~ (1973)
  12. 이필동, "새로 쓴 대구연극사" (2005), 한솔
  13. 양승국, "해방직후의 진보적 민족연극운동", 창작과 비평, (66), pp.191~214 (1989)
  14. 영남일보사, "경북연감", 영남일보사, ~ (1948)
  15. 위경혜, "광주의 극장문화사" (2005), 다지리
  16. 이명자, "영화로 만나는 남북의 문화" (2009), 민속원
  17. 정봉석, "부산영화사", 항도부산, (14), pp.322~373 (1997)
  18. 최준, "한국신문사" (1970), 일조각
  19. 영남일보, "건국음악의 양과 질", 영남일보(1945. 11. 14), 1~ (1945)
  20. 대중일보, "건설영화사 작품에 맹활동", 대중일보(1946. 9. 1), 2~ (1946)
  21. 영남일보, "격증되는 대구인구 매일 평균 삼백호식 집중", 영남일보(1946. 1. 18), 2~ (1946)
  22. 대구시보, "경북문화연맹주최 극, 영화운영좌담회", 대구시보(1946. 3. 29), 1~ (1946)
  23. 대구시보, "경주극장 접수", 대구시보(1945. 12. 21), 2~ (1945)
  24. 대구시보, "경주문화협회 첫 사업으로 경주예술학원 개설", 대구시보(1946. 4. 3), 2~ (1946)
  25. 대구시보, "(사설)계몽운동과 문화운동", 대구시보(1946. 2. 9), 1~ (1946)
  26. 영남일보, "고도경주 시나리오 모집", 영남일보(1946. 4. 19), 2~ (1946)
  27. 영남일보, "농촌경제의 재편성", 영남일보(1945. 12. 20), 1~ (1945)
  28. 대구시보, "다채한 대구기념행사 조영뉴-스와 미술동맹의 미전", 대구시보(1946. 2. 20), 2~ (1946)
  29. 동아일보, "당선씨나리오 황혼 싸운드판 박민천", 동아일보(1936. 1. 14), 5~ (1936)
  30. 남선경제신문, "대구공위 항구단체로", 남선경제신문(1946. 9. 15), 2~ (1946)
  31. 영남일보, "대구방송국서 지방뉴-쓰 방송", 영남일보(1946. 6. 19), 2~ (1946)
  32. 영남일보, "대구부민의 영화열 한 달에 한 번씩 바짐(빠짐) 업시(없이) 부민은 입장", 영남일보(1947. 4. 17), 2~ (1947)
  33. 대구시보, "대구영화협회서 씨나리오 영화소설 등을 모집", 대구시보(1945. 10. 9일), 2~ (1945)
  34. 대구시보, "대동신문 3주간 정간", 대구시보(1946. 5. 17), 1~ (1946)
  35. 영남일보, "도시기근과 인심의 불안", 영남일보(1946. 4. 5), 1~ (1946)
  36. 대구시보, "돌연 좌익단체 수색 선풍", 대구시보(1946. 8. 31), 2~ (1946)
  37. 영남일보, "라듸오 사용 주전(晝電) 금월 말로서 막음", 영남일보(1945. 12. 7), 2~ (1945)
  38. 영남일보, "문련문학부 임시부회 개최", 영남일보(1946. 5. 3), 2~ (1946)
  39. 대구시보, "문화건설연맹 첫 동맹회 개최", 대구시보(1945. 12. 21), 2~ (1945)
  40. 영남일보, "문화영화제작 호역을 주제로", 영남일보(1946. 7. 26), 2~ (1946)
  41. 대구시보, "문화인을 망라하야 영화좌담회", 대구시보(1946. 4. 6), 2~ (1946)
  42. 부녀일보, "문화총연맹 경북지부 준위결성", 부녀일보(1947. 6. 24), 2~ (1947)
  43. 영남일보, "미곡수집의 규칙비판", 영남일보(1946. 8. 18), 1~ (1946)
  44. 부녀일보, "민성일보 테로 자수사건 방관시 등의 유설을 부인", 부녀일보(1947. 4. 18), 2~ (1947)
  45. 영남일보, "민중과 예술", 부녀일보(1945. 11. 11), 1~ (1945)
  46. 백기만, "문화면의 전망과 요청 해방1주년 기념일을 마지하면서(3)", 대구시보(1946. 8. 25), 2~ (1946)
  47. 매일신보, "새조선의 문화건설 문화인들의 총력의 진군", 매일신보(1945. 9. 1), 2~ (1945)
  48. 영남일보, "10월뉴-쓰 6월상순 봉절", 영남일보(1946. 6. 26), 2~ (1946)
  49. 영남일보, "10월영화사 개칭 조선문화사로", 영남일보(1946. 6. 12), 2~ (1946)
  50. 남선경제신문, "(광고)10월영화사", 남선경제신문(1946. 3. 6), 2~ (1946)
  51. 대구시보, "10월영화사 혁신발족", 대구시보(1946. 6. 12), 2~ (1946)
  52. 영남일보, "식량난 타개코저 대구 조고계 총궐기 편집자회, 기자단당국에 진정", 영남일보(1946. 8. 22), 2~ (1946)
  53. 부녀일보, "심영 씨 테로 봉변 인연 깊은 만경관 압헤서(앞에서)", 부녀일보(1947. 7. 25), ~ (1947)
  54. 영남일보, "10․1사건 일단락", 영남일보(1947. 2. 6), 2~ (1947)
  55. 영남일보, "싸우는 열차 10월영화사 촬영", 영남일보(1946. 3. 30), 2~ (1946)
  56. 영남일보, "쌀을 주시오!", 영남일보(1946. 4. 2), 2~ (1946)
  57. 부녀일보, "언론기관에 대한 테로는 비겁한 행위다", 부녀일보(1947. 4. 1), 2~ (1947)
  58. 대구시보, "연극경연대회개최", 대구시보(1946 3. 9), 2~ (1946)
  59. 민성일보, "연극동맹 지부결성", 민성일보(1947. 6. 19), 2~ (1947)
  60. 대구시보, "영남보안대 등 발족 활동", 대구시보(1946. 8. 15), 2~ (1946)
  61. 부녀일보, "영맹지부 임시대회", 부녀일보(1947. 7. 8), 2~ (1947)
  62. 대구시보, "영천 문련서 문맹퇴치", 대구시보(1946. 5. 23), 2~ (1946)
  63. 대구시보, "영협 역할적 활약", 대구시보(1945. 11. 1), 1~ (1945)
  64. 대구시보, "영화검열 서(署)에서", 대구시보(1946. 12. 29), 2~ (1946)
  65. 대중일보, "영화연구사", 대중일보(1946. 10. 10), 2~ (1946)
  66. 영남일보, "예술가는 예술로 경북예술가협회 결성", 영남일보(1946. 5. 19), 2~ (1946)
  67. 대구시보, "우리는 단연코 자주독립을 요구한다 부내 칠십육개단체단결 일대 시위운동전개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맹활동", 대구시보(1946. 1. 1), 1~ (1946)
  68. 영남일보, "이동영화극 농민조합 도연맹 27일 결성대회 개최", 영남일보(1945. 11. 28), 2~ (1945)
  69. 대구시보, "인사소식", 대구시보(1945. 12. 28), 1~ (1945)
  70. 영남일보, "자본주의의 결함과 그 수정", 영남일보(1946. 1. 22), 1~ (1946)
  71. 대중일보, "조국을 위하여 건설영화 2회 작품", 대중일보(1946. 10. 23), 2~ (1946)
  72. 대구시보, "중학교연극부원의 극장공연 금지", 대구시보(1947. 6. 19), 2~ (1947)
  73. 민성일보, "찬란한 미술전 미술동맹 주최 이십일일부터", 민성일보(1947. 7. 19), 2~ (1947)
  74. 영남일보, "천연색영화제작개가 대구 최계복씨 노력 주효", 영남일보(1947. 3. 5), 2~ (1947)
  75. 영남일보, "춘궁은 조선역사의 상례", 영남일보(1946. 6. 5), 2~ (1946)
  76. 영남일보, "출판물을 정독하라 경북도에서 일반에 요망", 영남일보(1946. 1. 29), 2~ (1946)
  77. 영남일보, "팔십여 단체가 결속 공동투쟁 위원회 조직", 영남일보(1946. 1. 1), 1~ (1946)
  78. 부녀일보, "학생의 롱성사건 백오십명이 계속 경북중학에 발생", 부녀일보(1947. 6. 13), 2~ (1947)
  79. 남선경제신문, "대구공위 항구단체로", 남선경제신문(1946. 9. 15), 2~ (1946)
  80. 대구시보, "해방뉴-쓰 27일 시사회", 대구시보(1946. 2. 27), 2~ (1946)
  81. 영남일보, "해방의 선물은 기근?", 영남일보(1946. 4. 3), 2~ (1946)
  82. 영남일보, "향토문맹퇴치에 총궐기 불멸․민족문화를 발양! 교육관계기관 해방사업 전개", 영남일보(1946. 8. 9), 2~ (1946)
  83. 영남일보, "흥행계 편상(片想)", 영남일보(1945. 10. 28), 2~ (1945)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7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