簡論丁若鏞與黃宗羲的民本思想比較
Comparative analysis on People bases Ideology between Jung Yag Yong and Huang Zong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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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민본사상은 고대이래 한·중 양국의 정치사상 중 가장 중요한 사상 부류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중국은 오늘날 역시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정치방식으로 인해 민본과 민주의 결합을 매우 중시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민본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중국의 근대와 현대정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정약용(丁若鏞)과 황종희(黃宗羲)는 한국과 중국의 고대 민본사상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각각 조선후기와 명(明)말 청(淸)초라는 시대적 격동기를 경험했으며,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그들만의 독특한 경세치용(經世致用) 학문의 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정약용과 황종희는 사회·역사적 조건, 학문탐구 방법, 정치적 경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서로 유사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민본사상에 대한 비교를 통해 우리는 봉건사회의 정치사상이 근대로 진입하는 경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본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정약용의 민본사상은 군권을 옹호하는 군권 중심의 민본사상인 반면, 황종희의 민본사상은 군권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군권억제 중심의 민본사상이며, 이는 둘의 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황종희는 자신의 조국인 명(明)이 멸망한 교훈을 통해, 일국의 흥망에 대한 군주의 역할을 더욱 뼈저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는 전통적인 유교의 군권론과 상반되는 주장을 제시함과 동시에, 나라의 모든 복과 화근이 군주로부터 유발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반면, 정약용은 왕조가 교체되는 격렬한 투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황종희에 비해 매우 온건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황종희의 재상제도 설치, 학교 설립 등 주장은 명(明)의 망국(亡國)을 통해 얻은 교훈을 총결하고 있으며, 정약용의 목민사상은 왕권의 진일보 강화를 위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민본사상의 각도에서 볼 때, 비록 둘의 사상에 각기 다른 주장이 존재하나, 민을 근본으로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정약용과 황종희는 한·중 양국의 대학자로 후세의 높은 인정을 받고 있으며, 용감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와 민족에 대한 책임감은 전형적인 경세치용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봉건 전제제도에 대한 비판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계몽사상, 사상해방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9)
- 朱熹, "四書章句集注" (1996), 中華書局
- 黃宗羲, "孟子師說" (1984), 中華書局
- 黃宗羲, "明夷待訪錄"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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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丁若鏞, "與猶堂全書" (1970), 경인문화사
- 黃心川, "東方著名哲學家評傳 韓國卷" (2000), 山東人民出版社
- 徐定寶, "黃宗羲評傳" (2002), 南京大學出版社
- 錢穆, "中國近三百年學術史" (1997), 商務印書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