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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기 중엽, 평양지역 소재 고구려 벽화고분의 墓向에 관한 試論-東岩里壁畵古墳, 高山洞7・10號壁畵古墳의 묘향과 集安세력의 舊 樂浪・帶方지역 진출 시기에 대해-

The Door Direction of Goguryo(高句麗) Tomb of Pyeongyang(平壤) Area in 4∼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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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考에서는 고구려가 樂浪지역을 영유하게 된 美川王代, 즉 4세기부터 그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평양으로 천도하기에 이르는 5세기 전·중반으로 편년되는 평양지역 소재 고구려벽화고분의 墓向 및 벽화 도상을 당시 고구려시대상황과 함께 살펴보았다. 또 이를 통해 集安지역의 原 고구려세력이 평양지역으로 진출하여 통치권를 장악하기 시작한 시점을 추정해보았다. 집안지역의 고구려세력들은 구 낙랑군지역을 군사적으로 영유하고 나서 곧바로 대거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중국인 망명객이나 현지 토착세력을 통해 통치했으며,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평양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현지의 토착세력이나, 중국인 망명세력과 함께 이 지역에 대한 통치에 참여하게 된다. 순천지역의 東岩里壁畵古墳, 평양지역의 高山洞7·10號墳의 피장자가 바로 이 시기 이주한 집안지역 출신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427년 장수왕에 의한 평양천도를 계기로, 집안지역의 고구려세력들이 대거 평양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평양으로 진출하여 舊 樂浪·帶方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고히 장악해 나감과 동시에 서서히 평양지역의 문화를 수용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이 시기 고구려고분벽화 도상에 집안지역과 평양지역적인 문화 요소가 혼재하여 나타나게 된다. 死後觀的인 측면에서도 서서히 평양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묘제 역시 자연스레 평양지역의 것을 수용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일환으로 무덤 축조 방향이 고유의 서남향에서 남향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5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문화의 융합이 상당부분 진행되는데, 이 시기 벽화도상에서 집안지역 고구려 고유의 문화요소와 중국 양식으로 일컬어지는 낙랑 문화 요소가 함께 나타나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집안지역에서는 5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도 고분 축조방향이 여전히 고유의 서남향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고구려 문화가 單一化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Abstract

This paper argues the period about attacks on Pyeongyang(平壤) by the Goguryo(高句麗) forces with the door direction of tombs. In 4th century, Goguryo kingdom started to ruling Nangrang(樂浪) province of XiJin(西晉) that located in Pyeongyang area. At first, Goguryo ruling their new people with peculiar ruling system, because they can not perfectly controling the local native authority, so they have to cooperate with them to rule this new territory. But arrived at 5th century, it's changed. Many Goguryo people who were living at Jian(集安) ― the old capital of Goguryo moved to Pyeongyang and begin to ruling this new place directly. With firm political control, the immigrations begun to accept new culture from this new territory. In this reason, the direction of tomb was changed from southwest to south. But even though this, at least in the first of 5th century they continually keeps their original traditions. The Dongam-ri tomb and Gosan-dong No.7·10 tomb are the typical cases to prov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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