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황해도 甕津郡 주민의 住居 양상 - 1905년도 南面과 龍淵面 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The Dwelling Living Aspects of Ongjin - gun, Hwanghae Province Residents in the Early 20th Century
1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논문은 新호적제도에 의해 조사․작성된 황해도 甕津郡 南面과 龍淵面의 1905년 戶籍 자료를 분석하여 주민들의 住居 양상을 考究한 것이다. 옹진군 남면과 용연면은 황해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沿海지역이었으며, 남면 호적 자료에는 昌麟島라는 島嶼 주민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따라서 두 책의 호적 자료를 통해 20세기 초 황해도 연해 및 도서지역에서 거주했던 총 789호(남면 354호, 용연면 435호) 주민들의 住居生活史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복원할 수 있었다. 첫째, 동족집단을 이루고 있는 성씨들은 대부분 해당 面의 평균치보다 호당 평균 인구수 및 평균 가택 칸 수가 모두 많거나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일부 성씨의 경우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둘째, 瓦家와 借有 가택의 점유율이 극히 낮게 나타나 20세기 초 옹진군 남면과 용연면의 주민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 소유의 초가집에서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가족과 가택 규모의 분포에서는 남면의 경우 3~5인 가족이 전체의 80%, 3~6칸 가택이 전체의 86%를 각기 차지하고 있었으며, 용연면의 경우 3~5인 가족이 전체의 74%, 3~6칸 가택이 전체의 90%를 각기 차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넷째, 도서지역인 昌麟島의 가족 분포는 3~5인 가족이 전체의 90%나 되었으며, 가택 분포는 4칸 가택이 무려 66%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나타냈다. 한편, 호당 평균 가택 칸 수는 창린도가 陸地部보다 약 1칸 가량이나 더 작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신식호적 자료를 분석하여 그동안 연구가 미진했던 북한지역(또한 황해도지역), 특히 연해지역 및 도서지역 주민들의 주거생활상을 究明하였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의를 지닌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d the dwelling living patterns of residents by analyzing the data of 1905 census register collected by Nam-myeon(南面) and Yongyeon-myeon(龍淵面) in Hwanghae province Ongjin-gun(甕津郡), which were surveyed and written by the new census system. Nam-myeon and Yongyeon-myeon in Ongjin-gun are coastal area located at the southwest edge of Hwanghae province, and were also included in the list residents of Changrin-island(昌麟島). Therefore, it was able to restore the residential aspects of 789 households in the coastal area and island in the early 20th century. First, the average number of same gender groups in the same blood village(同族마을) was larger than the average population size and average size in each house. Of course, some of the same gender group have shown the opposite aspects. Second, there were almost no tile-roofed houses(瓦家) or rental houses(‘借有’가택). Thus, residents of Ongjin-gun knew that almost everyone lived in thatched-roof house(草家) and own homes(‘己有’가택). Third, in the case of Nam-myeon, families comprised three to five persons, accounted for 80 percent of the total. And the house comprised three to six kan(間), accounted for 86 percent of the total. Also, in the case of Yongyeon-myeon, families comprised three to five persons, accounted for 74 percent of the total. And the house comprised three to six homes, accounted for 90 percent of the total. Fourth, in the case of Changrin-island, families comprised three to five persons, accounted for 90 percent of the total. And the house comprised four kan, accounted for 66 percent of the total. On the other hand, the average house occupancy rate was approximately one kan smaller than that of the land.
참고문헌 (53)
- "光武九年一月日黃海道甕津郡戶籍成冊: 南面 第一", 일본 京都大學總合博物館 소장 : 국사편찬위원회 MF0008891(등록번호), ~
- "光武九年一月日黃海道甕津郡戶籍成冊: 龍淵面 第二", 일본 京都大學總合博物館 소장 : 국사편찬위원회 MF0008891(등록번호), ~
-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URL]
- "經世遺表: 한국고전번역원"[URL]
- "輿地圖書 下" (1973), 국사편찬위원회
- "光武三年五月 日甕津蘇江邑志",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10950, ~
- "戶口總數" (1996), 서울대학교 奎章閣
- "韓國戶口表" (1907), 政府財政顧問本部
- "民籍統計表" (1910), 內務警務局
- "海東地圖" (1995), 서울대학교 奎章閣
-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 (1982), 景仁文化社
- 越智唯七, "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1917)
- 朝鮮總督府, "大正十四年十月一日現在 簡易國勢調査結果表", ~ (1925)
- 善生永助, "朝鮮總督府" (2008), 민속원
- 善生永助, "朝鮮總督府" (2008), 민속원
- 金田松圭, "朝鮮府郡島面町洞里名稱一覽" (1944), 廣韓書林
-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제11책(黃海․平安南北道), ,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 (1980)
- 金泳謨, "韓國社會階層硏究" (1982), 일조각
- 옹진군민회지 편찬위원회, "甕津郡民會誌" (1995), 옹진군민회
- 崔弘基, "(改訂版)韓國戶籍制度史 硏究" (1997), 서울대 출판부
- 李憲昶, "民籍統計表의 해설과 이용방법" (1997),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 吳星, "韓國近代商業都市硏究" (1998), 국학자료원
-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건축사연구 1(분야와 시대)" (2003), 발언
- 제이콥 로버트 무스, "1900, 조선에 살다(Village Life in Korea)" (2008), 푸른역사
- 강영환, "북한의 옛집 3: 그 기억과 재생-황해도 편" (2012), 이담
- 최영준, "개화기의 주거생활사" (2013), 한길사
- 宮嶋博史, "朝鮮甲午改革以後の商業的農業", 史林, 57(6) (1974), 史學硏究會
- 韓榮國, "조선 후기의 丹城縣戶籍大帳에 대하여", 精神文化, 3(2) (198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李榮薰, "대한제국기의 토지제도" (1990), 민음사
- 李榮薰, "光武量田에 있어서 ‘時主’ 파악의 실상(Ⅱ)-京畿道․忠淸南道 光武量案 사례분석", 省谷論叢, 23 (1992)
- 李海濬, "朝鮮後期 村落構造變化의 背景", 韓國文化, 14 (1993),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 吉田光男, "戶籍から見た二〇世紀初頭ソウルの「人」と「家」-京都大學所藏 漢城府戶籍の基礎的分析", 朝鮮學報, 147 (1993), 朝鮮學會
- 禹熙貞, "19세기 말 황해도 곡산군 주민의 사회적 실태 : 건양 원년(1896) 《谷山郡鳳嗚面戶籍案》의 분석", 석사, 역사교육, pp.1994
- 이세영, "대한제국기 농촌사회경제구조의 변화-1900~1903년 경기도 광주부 북방면을 중심으로", 韓國文化, 16 (1995),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 李憲昶, "民籍統計表의 검토", 古文書硏究, 9-10 (1996), 한국고문서학회
- 吳星, "戶籍으로 본 韓末 농촌지역의 戶의 구성-京畿道 廣州府 北方面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18 (2001), 한국근현대사학회
- 임학성, "19세기 말 戶籍자료를 통해 본 安東주민의 諸모습― 1899년(光武 3) 南先面戶籍의 사례 분석 ―", 진단학보, (98), pp.27~80 (2004), 진단학회
- 李正善, "한국 근대 ‘戶籍制度’의 변천", 韓國史論, 55 (2009), 서울대 국사학과
- 장경준, "한말 동래의 지역민과 이들의 거주 모습", 博物館硏究論集, 15 (2009), 부산박물관
- 장경준, "18~20세기 초 동래지역의 인구와 주거양태", 역사와 세계, 37, pp.37~68 (2010), 효원사학회
- 신영우, "대한제국기 충북 충주의 주거사정", 역사와 실학, (42), pp.5~51 (2010), 역사실학회
- 山內民博, "朝鮮新式戶籍關連資料の基礎的檢討(1)-忠淸南道泰安郡新式戶籍關連資料", 資料學硏究, 8 (2011), 新潟大學大學院現代社会文化研究科
- 山內民博, "朝鮮新式戶籍關連資料の基礎的檢討(2)-建陽元年咸鏡南道端川郡新滿面戶籍", 資料學硏究, 9 (2012)
- 강은경, "대한제국기 괴산 일대 순흥 안씨의 토지소유와 주거 실태", 한국사연구, (157), pp.77~138 (2012), 한국사연구회[DOI]
- 유창호, "20세기 초 경기도 통진군 ‘보구곶’마을 사람들의 생활 양태 -1901년(光武 5) 通津郡 甫口串面 戶籍자료 분석 사례-", 역사민속학, (40), pp.37~70 (2012), 한국역사민속학회
- 이정주, "19세기 말 평안북도 구성군 家戶의 구성과 거주 양태", 역사민속학, (43), pp.325~348 (2013), 한국역사민속학회
- 이정주, "1901년 작성 北靑 戶籍과 北靑郡民 소요 사건", 韓國史學報, (53), pp.355~385 (2013), 고려사학회
- 이정주, "한말 황해도 殷栗郡 南上里坊 호적표로 본 가족과 마을", 史叢(사총), (81), pp.155~181 (2014), 역사연구소
- 이정주, "19세기말 戶籍表로 본 平安南道 順川郡 戶의 구성", 史叢(사총), (84), pp.1~29 (2015), 역사연구소
- 이정주, "1905년 작성 平安北道 慈城郡 호적 검토", 역사민속학, (49), pp.270~291 (2015), 한국역사민속학회
- 이정주, "한말 함경북도 鏡城郡 호적표에 보이는 戶와 住宅-戶稅 부담과 관련하여-", 한국학연구, (40), pp.369~398 (2016), 한국학연구소
- 임학성, "20세기 초 西間島 거주 移住韓人들의 생활 양태 - “楚山江北戶籍”(1902년) 자료의 분석 사례 -", 동북아역사논총, (46), pp.192~220 (2014), 동북아역사재단
- 권진주, "戶籍자료를 통해 본 대한제국기 충청도지역의 주민 실태", 석사, 한국학과 한국사전공, pp.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