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慶南 草溪郡 주민의 거주 양상-光武 11년(1907) 草溪郡 初冊面․伯岩面 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The Dwelling Living Aspects of Chogye-gun, Gyeongsangnamdo Province Residents in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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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新호적제도에 의해 조사․작성된 경상남도 草溪郡 初冊面과 伯岩面의 1907 년(光武 11) 戶籍 자료를 분석하여 주민들의 거주 양상을 考究한 것이다. 초계군 초책면과백암면은 경상남도의 서북부에 위치한 山間지역이었다. 따라서 두 책의 호적 자료를 통해20세기 초 경상남도 산간지역에서 거주했던 총 663호(초책면 360호, 백암면 303호), 3,240명(초책면 1,761명, 백암면 1,479명) 주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활 양상을 복원할 수 있었다. 첫째, 호당 평균인구수는 4.89명(초책면 4.89명, 백암면 4.88명)으로 다른 지역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볼 때 비교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性比는 111.1%(초책면107.7%, 백암면 115.3%)를 보여 성별 불균형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주민들의 연령 분포에서 1세 남녀 인구가 확인되어 대부분의 호적 자료에서 발견되는 嬰幼兒 인구, 특히 女兒 인구의 호적 누락 양상은 본 연구 사례에서는 전혀 나타나지않았다. 따라서 연령별 남녀별 인구 구조에서도 유소년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노년층으로 올라갈수록 인구수가 줄어드는 ‘多産多死’의 완벽한 인구 피라미드 유형을 나타냈다. 셋째, 호주의 성씨 분포를 분석한 결과, 상위 비중의 성씨들은 대체로 해당 마을(里)에서同族集團을 이루고 있었으며, 초책면은 전체 8개 마을 중 7개 마을에서, 백암면은 전체 6 개 마을 중 2개 마을에서 어느 특정 성씨가 동족집단을 이루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넷째, 주민(戶主)의 직업은 農業이 90% 이상의 압도적 분포를 보였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의 직업 분포 양상에서는 다른 시기 및 지역의 호적 자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직업종류가 확인되었다. 바로 옷감 제조와 관련된 ‘織’(베 짜기)과 ‘績’(길쌈)을 직업으로 기재한경우인데 이러한 직업을 기재한 호주는 모두 寡婦였다. 다섯째, 주민들은 모두 草家에서 거주했으며, 단 1호만이 전셋집(‘借有’)에서 거주했을뿐 나머지는 모두 자기 소유(‘己有’)의 가택에서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당 평균 가택칸 수[間數]는 3.35칸(초책면 3.11칸, 백암면 3.63칸)으로 나타났으며, 가택 규모의 분포는 2~3칸 크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여섯째, 가택의 용도를 분석한 결과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墓室․碑閣․學校․紙房 및空家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성격의 가택(건물)을 호적에서 하나의 ‘戶’로 편제한 것은 호적조사의 결과로 등재된 호가 반드시 世帶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d the dwelling living patterns of residents by analyzing the data of 1907 census register collected by Chocheik-myeon(初冊面) and Baikam-myeon(伯岩面) in Gyeongsangnamdo province Chogye-gun(草溪郡), which were surveyed and written by the new census system. Chocheik-myeon and Baikam-myeon in Chogye-gun are mountainous area in the northwestern part of Gyeongsangnamdo province. Therefore, it was able to restore the residential aspects of 663 households in the mountainous area in the early 20th century. First, the average number of people per house was 4.89. The sex ratio was 111.1%, indicating that gender imbalance was not large. Second, in the age distribution of the residents, the one-year-old male and female population were identified and the omission of the girl, which is found in most family records, did not appear at all. Therefore, in the demographic structure, the young people occupied the largest portion, and the more the older the population, the more perfect the “Population Pyramid” type. Third, the surnames with the highest share were the same blood village(同族 마을), the Chocheik-myeon was grouped in 7 out of 8 villages, and the Baikam-myeon was in 2 out of 6 villages. Fourth, the occupation of residents accounted for more than 90% of 52 한국학연구 제46집agriculture. However, the distribution patterns of occupations in these two areas confirmed the types of occupations that were rarely found in other census registers. This is the case of weaving(베 짜기. 織) and handweaving(길쌈. 績) related to fabric manufacturing, all of which were widows. Fifth, the residents all lived in thatched-roof house(草家), only one house lived in the rental house(‘借有’ 가택), and all others lived in their own house (‘己有’ 가택). The house size per family was 3.35 kan(間), and the distribution of the house occupied more than half of the total size of 2 ~ 3 kan squares. Finally, analyzing the purpose of the house, the tomb room, the pavilion for a monument, the school, the paper workshop and the empty house where the person does not live were also confirmed. The registration of a house of this character as a “Ho(戶)” in the family register indicates that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registered call as a result of the family register does not necessarily mean a house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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