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전라도 나주목 도초도의공간변화와 ‘학교염전’의 설치
A Study on the Spatial Change of Docho island in Naju-mok, Jeolla-do in Modern and present age and the Installation of ‘School-Salt evaporation pond’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연구는 전라도 나주목 부속도서인 都草島(현 신안군 도초면) 간척에 관한 사례이다. 조선전기 도초도는 목장과 송전을 설치하였다. 즉 섬이 주민들을 위한 정주공간으로 기능하기보다는 국용조달을 위한 송전과 목장으로 활용되었다. 조선후기에 내륙지역 유이민들이 섬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마을 앞에 제방을 쌓아 간척지를 만들었다. 이때 조성된 제방을 ‘舊堰’ 혹은 ‘內堰’이라 불렀다. 그 후 섬사람들은 구언 너머에 ‘新堰’을 축조하여 점차 간척지의 외연을 확장해나갔다. 해방이후 도초도 사람들은 미개발된 섬의 북부에 외남방조제를 축조하여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였다. 간척공사가 완료되자, 섬사람들은 간척지의 일부 地目을 ‘학교염전’이라 칭하고, 이 재원을 ‘都草高等公民學校’의 운영비로 기부하였다. 근현대 섬에서 이루어진 간척사업은 중앙정부를 대신하여 섬마을 중등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Abstract
This study is a case study on the land reclamation of Docho island (now Docho-myeon, Shinan-gun), which is an annexed island of Naju-mok, Jeolla- do. In the early Joseon Dynasty, Docho island was an island where the ranch and the pine forest were built. The space of the island was used as a ranch and pine forest for national expenditure procurement rather than functioning as a settlement space for island resid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ndering people from the inland area moved to the island. The immigrants from the inland made a reclaimed land by built an embankment in front of the village. That was called ‘Gu-eon Old Embankment’ or ‘Nae-eon Inner Embankment’. After that, people in the Docho island built ‘Sin-eon New Embankment’ beyond Old Embankment and gradually expanded the scope of reclaimed land. After liberation, people in the Docho island built a large-scale reclaimed land by constructing a seawall in the northern part of the undeveloped island. When the reclamation work was completed, the people in Docho-island named the reclaimed land as ‘School-Salt evaporation pond’ and donated the source of revenue as an operating fund of ‘Docho higher civic education school’. The land reclamation made on island in the modern and present age considered to have significantly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island village’s secondary education institutions on behalf of the central government.
참고문헌 (37)
- "태종실록", ~
- "세종실록", ~
- "비변사등록", ~
- "여지도서", ~
- "호구총수", ~
- "全羅道靈巖郡於義宮立案買得是在郡地昆一道牛嶼堰新築堰畓及筒槊刈取處打量成冊", 서울대 한국학연구원 규장각 奎18406, ~
- "전라남도무안군도초면지적원도 1910~1918", ~ (1910)
- "도초면토지대장", ~ (1916)
- "도초면방조제대장", ~
- "염전개발염제조허가증", ~
- "학교인가서류철 1937, 1957, 1963", ~ (1937)
- "학교연혁", ~ (1964)
- "도초고등공민학교연혁지 1962~1964", ~ (1962)
- "사령부", ~ (1964)
- "재산대장", ~ (1964)
- "법인임원승인대장", ~ (1964)
- "등기대장 1968~1970", ~ (1968)
- "학교법인 도초중학교 현황", ~ (1975)
- "한국지명총람" (1983), 한글학회
- 김경옥, "조선후기 도서연구" (2004), 혜안
- 신안군 간척사와 문화연구-비금면·도초면,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신안군, ~ (2015)
- 정윤섭, "조선후기 해남윤씨가의 해언전 개발과 도서·연해 경영", 박사, 한국지방사학, pp.2011
- 정윤섭, "해남윤씨가의 간척과 도서 경영" (2012), 민속원
- 정진숙, "20세기 초 한국인 설립 사립학교 연구-설립주체와 재정을 중심으로", 박사, pp.2019
- 김경옥, "조선시기 喬桐 사람들의 入島와 築筒·堤堰을 통한 토지개간", 『도서문화』, (32), pp.241~272 (2008), 도서문화연구원[DOI]
- 김경옥, "19~20세기 안좌도 『前津堰修契記』를 통해 본 제언 축조와 운영 실태", 藏書閣, (30), pp.10~42 (2013), 한국학중앙연구원[DOI]
- 김경옥, "19-20세기 암태도 주민들의 제언축조와 경제생활-益今里 廣頭堰 사례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45), pp.394~422 (2014), 한국역사민속학회
- 김경옥, "19~20세기 비금도 간척지의 조성과 이용 실태", 한국학연구, (41), pp.497~526 (2016), 한국학연구소
- 김경옥, "20세기 비금도 가산리의 공간변화와 간척지의 이용실태", 역사와경계, (102), pp.111~145 (2017), 부산경남사학회
- 김자중, "일제 식민지기 조선의 고등교육체제의 성격", 한국교육사학, 38(3), pp.59~87 (2016), 한국교육사학회[DOI]
- 백남곤, "일제시기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운동", 석사, pp.2019
- 이광록, "근현대 신안군 도초도의 간척과 그 영향", 석사, pp.2016
- 이문포, "일제하 고등보통학교 설립운동", 석사, pp.1999
- 이선옥, "일제시기 진주지역 사립고등보통학교 설립과 운영을 둘러싼 주도세력의 동향", 석사, pp.2015
- 이창영, "1920년대 무안군 도초도 농민운동 연구", 석사, pp.2016
- 이태진, "15~16세기의 저평·저습지 개간농업", 국사관논총, 2, pp.133~166 (1989), 국사편찬위원회
- 임현오, "서남해 연해도서지역의 촌락발달과 경지확대과정 : 전남 신안군을 중심으로", 석사, 지리교육, pp.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