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기 일본인 연구자의 병자호란 관련 연구 검토 -오시부치 하지메(鴛淵一),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우라 렌이치(浦廉一)의 논의를 중심으로-
A Critical Review on Japanese Scholar’s Studies on the Byeongja Horan(丙子胡亂, Qing Invasion of Joseon Korea in 1637) during the Colonial Era -with a Focus upon Studies of Oshibuchi Hajime(鴛淵一),Shinoda Jisaku(篠田治策), and Ura Renichi(浦廉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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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기 병자호란을 專論으로 다룬 일본인 연구자의 저작을 검토하고, 그 특징과 한계를 정리한 연구이다. 첫 번째, 오시부치 하지메(鴛淵一)의 연구는 三田渡 碑文을 주요 사료로 활용하여 사르후 전투,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관통하는 전쟁의 공통된 특징과 양상을 추출하고자 시도했다. 조ㆍ청 무력 충돌의 배후에 있는 청의 경제적 욕구를 삼전도비에 기술된 청 황제의 鴻恩과 연관시켜 논지를 전개한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세 차례의 무력 충돌 직후 조ㆍ명ㆍ청의 국력과 상황이 각각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설명은 다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평할 만하다. 두 번째,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의 연구는 러일 전쟁 당시 국제법 전공자로서 러시아군의 항복 업무를 담당한 저자의 비교사적 관심 아래 시도되었다. 근대 이후 병자호란을 단독 주제로 다룬 최초의 학술서로서 남한산성 농성 전후의 전투, 교섭, 항복 과정을 상세히 정리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논문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만의 시각이나 깊이 있는 해석은 본고에서 거론한 다른 두 동양사 전공 연구자에 비해 부족하다. 세 번째, 우라 렌이치(浦廉一)의 연구는 17세기 동아시아 패권 변동기 조ㆍ청 간의 갈등을 일본의 입장과 시선에서 복원한 것이다. 이나바 이와키치의 선행 연구에서 간략히 언급하였던 관련 내용, 특히 조선-대마도-에도막부 사이의 교섭과 상호 인식, 그리고 청의 조치와 대응, 이와 관련된 대일본 인식 등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입장과 지위를 과대평가함으로써 초래된 억지스러운 설명과 해석도 간간이 보인다. 세 명의 연구 모두 조선 측 사료에 보이는 主和ㆍ斥和論의 갈등과 대립을 조선 정치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黨派性論이나 事大主義論과 결부하여 이해하였다. 아울러 조선 내 척화론의 자발적 동력과 당위적 성격, 그 역사적 특징을 포착하지 못한 채 人災論的 史評을 付記하는 데 그쳤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works of Japanese researchers who have focused on the Byeongja Horan(丙子胡亂) as a key topic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summarizes their features and limitations. The first, by Oshibuchi Hajime(鴛淵一), utilizes the Samjeondobi(三田渡碑)’s inscriptions as a primary source and attempts to extract common features and aspects of the wars that run through the Battle of Sarhu, Jeongmyo Horan(丁卯胡亂), and Byeongja Horan(丙子胡亂). His thesis is characterized by linking the economic needs of the Qing dynasty behind the armed conflicts between Joseon and Qing to the great and generous grace of the Qing emperor described in the inscriptions. However, given the different national powers and circumstances of the Joseon, Ming, and Qing dynasties in the immediate aftermath of the three armed conflicts, it is fair to say that his explanation suffers from the 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 The second, the study of Shinoda Jisaku(篠田治策), was attempted under the comparative historical interest of the author, who, as an international law major, was in charge of the surrender of the Russian army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It is the first scholarly book to deal with the Byeongja Horan(丙子胡亂) as a single topic since modern times, and it is significant that it details the battles, negotiations, and surrender process before and after the siege of Namhan Sanseong(南漢山城). However, the author’s unique perspective and in-depth interpretations throughout the book are lacking compared to the works of the other two major oriental history researchers. The third study, by Ura Renichi(浦廉一), reconstructs the conflict between the Joseon and Qing dynasties in the 17th century, a period of hegemonic change in East Asia, from a Japanese perspective. Inaba Iwakichi(稻葉岩吉)’s earlier work briefly touched on relevant details, especially the negotiations and mutual recognition between Joseon, Tsushima, and the Edo shogunate, as well as the Qing dynasty’s actions and responses, and Japanese perceptions of them. However, these studies also overestimate Japan’s position and status at the time, leading to forced explanations and interpretations. All three studies only understood the conflict and confrontation between Juhwaron(主和論) and Cheokhwaron(斥和論) in Joseon’s historical sources in conjunction with the theory of partisanship or the theory of sadaejuui(事大主義論), which symbolizes the backwardness of Joseon politics. Furthermore, they failed to capture the voluntary driving force, legitimacy, and historical characteristics of Cheokhwaron(斥和論)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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