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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의 ‘민족동권(民族同權)’ 운동과 식민지 체제의 균열적 성격 -재만동포옹호운동을 중심으로-

Singanhoe’s Ethnic Equality Movement between pro and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 Regime -Focusing on a Campaign for Protecting Manchurian Kor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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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재만동포옹호운동을 중심으로 신간회 운동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신간회의 재만동포옹호운동은 재만동포옹호동맹(이하 옹호동맹)을 매개로 전개되었다. 옹호동맹은 신간회 본부의 적극적 참여로 결성되었고, 신간회 지회는 옹호동맹의 지방 확산에 기여했다. 옹호동맹은 화교배척 반대 입장을 가지고 만주 조선인 학살 소문을 정정하고 재만 조선인 문제가 중국인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했다. 또한 중국인들과 우호적 관계 속에서 만주 조선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이는 재만 조선인의 중국 입적 지지 주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재만 조선인들이 중국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인에게도 일본국적법을 적용해 탈적을 허용하라는 주장이기도 했다. 즉 재만동포옹호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제기된 사회적 의제는 조선 민족에게도 일본 민족과 동등한 법률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민족동권(民族同權)’이었다. 이처럼 신간회 운동은 외형적으로 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통치권을 전제한 개량적인 법적 권리 획득 운동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조선인의 신민화를 의미하지 않았다. 민족동권의 논리가 일제의 재만 조선인 문제 해결의 방식과 달랐기 때문이다. 일제는 상조권 관철을 통해 만주 진출을 적극화하고 만주 조선인들을 일본의 신민으로서 보호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일본국적법의 적용과 중국 입적을 통해 재만 조선인의 생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옹호동맹의 견해와 충돌되었다. 만주 조선인들에게 일본국적법을 적용할 경우 이들은 중국 국민으로서 중국 법률의 보호를 받게 된다. 즉 재만 조선인의 국적 이탈권(탈적권) 보장과 중국 입적 지지는 일제의 세력 범위에서 재만 조선인들을 제외시키려는 것이었다. 신간회 지회에서 기획한 강연회․연설회․주민대회와 지회대회는 이와 같은 주장을 조선인 사회의 공론으로 만들려는 과정으로 이는 일제가 곧 만주 조선인의 보호자라는 허황된 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조선 거주 조선인들에게도 이들의 삶이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될 필요가 없다는 의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신간회 운동의 방향은 내선융화 이데올로기가 조선 민중의 의식에 침투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만동포옹호운동의 사례에서 볼 때 신간회의 민족동권 운동은 조선 민중이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에 흡수되거나 동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반식민주의적 효과를 꾀하면서 식민지 체제를 균열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plored aspects of that Singanhoe cracked the Japanese colonial regime focusing on a campaign for protecting Manchurian Koreans. The campaign was developed through the Alliance for Protecting Manchurian Koreans(hereinafter referred to as the APMK). The APMK was made by the leaders of Singanhoe headquaters, and branches of Singanhoe contributed to the regional spread of the APMK. The campaign corrected rumors that Chinese slaughtered innocent Koreans in Manchuria and clarified that the deportation of Koreans was not caused by plain Chinese in Manchuria with the opposition to Koreans’ attacks on the Chinese in the Korean Peninsula. In addition, the APMK declared to solve sufferings that Koreans were experiencing cementing friendly relations with Chinese and argued Manchurian Koreans’ acquisition of Chinese nationality. This meant that the colonial state should have applied the Japanese Nationality Act to Koreans; therefore, the Singanhoe movement, represented by the campaign for protecting Manchurian Koreans, was an ethnic equality movement to assert the same rights as Japanese and revealed itself as a kind of civil rights movement. However, it is very important that this played a role in disrupting the spread of the ideology of the harmony between Japanese and Koreans made by Japanese colonialists. If Koreans in Manchuria had been subject to the Japanese Nationality Act, they, as Chinese people, would have been protected by Chinese laws. This idea differed from the Japanese solution to protect Manchurian Koreans as Japanese subjects by giving them ownership of the lands. This showed that the APMK sought effectiveness to destabilize the image that the Empire of Japan was Manchurian Koreans’ guardian. Also, this implicated that it was not necessary to consider Koreans’ lives improved in the prosperity of the Empire of Japan. Therefore, the Singanhoe movement, when figuring out in the case of the campaign protecting Manchurian Koreans, had anti-colonialism characteristic to help Koreans breaking away from the colonial ideology and played a part in cracking the colonial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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