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유신체제와 검열, 검열체제 재편성의 동력과 민간자율기구의 존재방식

Revitalizing regime and censorship,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reorganization of the censorship system and the way private self-governing organizations exist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논문은 박정희정권의 의사헤게모니 지배-프로파간다-검열체제의 동력학이란 구조적 역학의 관점에서 1970년대 검열체제의 확대 재편을 재구성하고, 사회통제의 하위양식으로서 검열의 위상과 그 기능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국가안보를 지배이데올로기로 한 국가비상사태-유신헌법-긴급조치의 법제도적 토대 위에서 구사되었는데, 사회․문화정책도 이러한 기조와 방향에 종속되어 입안․배치되었다. 검열 또한 프로파간다 및 문화통제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변화무쌍한 변동을 거친다. 지배/저항의 분극화 현상이 촉진되면서 검열전선의 경직화를 고조시켰다. 1970년대 검열의 심층과 정점에는 합법적 검열자 중앙정보부가 존재한다. 중앙정보부는 대내외 심리전, 프로파간다, 검열을 일사불란하게 기획․통제하는 빅 브라더였다. 총력안보체제의 제도화를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발동된 긴급조치를 계기로 검열의 수위와 진폭이 최대치로 증대하면서 한국검열사의 종합전시장을 이룬다. 첫째, 행정입법의 강화를 통해 전면적․공세적 검열이 극대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언론 규제의 양산, 퇴폐 규제의 본격화,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검열 기조 등이 수반되고 식민지검열의 유제가 재생되기도 했다. 둘째, 통제의 표적이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까지 미친 가운데 표적이 된 검열대상에 대해서는 사회적․문화적 기반을 붕괴시키는 수준으로 진전된다. 행정지도를 동원하여 제도적 검열의 구성적 외부까지 통제했다. 셋째, 긴급조치시기 민간자율기구의 위상이 재정위되면서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통제가 전면화 된다. 법정기구화를 기반으로 대중문화예술을 총력안보의 정략적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프로파간다의 범용성보다는 부정적 통제가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윤리적 문제를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발상이었다. 퇴폐, 왜색, 저질 등은 반국가적 요소로 규정되면서 국민총화를 좀먹는 사회 내부의 적이자 명백한 이적행위에 해당한다. 그것은 사상검열의 부재, 미풍양속 저해에 대한 검열이 압도적이었던 심의 실적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긴급조치가 무기한으로 연장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전면적 검열에 따른 사회․문화에 대한 강압적 통제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쇄시킨 최대장애물은 자유민주주의를 염원한 건전한 국민들이었다. 유신체제가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적 원리를 통해 성립되었다는 불편한 진실, 또한 법치주의로 분식된 교묘한 관료주의체제였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탐구하는 작업을 통해서 박정희체제 검열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construct the reorganization of the censorship system in the 1970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tructural dynamics of the Park Chung-hee regime's pseudo-hegemony domination, propaganda, and the dynamics of the censorship system, and to explore the status and function of censorship as a sub-mode of social control. The basis of the authoritarian rule of the Park Chung-hee regime in the 1970s was the permanentization of security ideology and state of national emergency. Socio-cultural policies were also deployed subordinate to these trends and directions. Censorship also undergoes changeable changes as it is used as a major means of propaganda and cultural control. At the depth and peak of censorship in the 1970s lies the legal censor, KCIA. The level and amplitude of censorship increased to the maximum in the wake of the law of prosecutive emergency, which was triggered as a policy means for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all-out security system, and the Korean censor's total exhibition was completed. First, overall and offensive censorship was maximized through strengthening administration legislation. In the process, the mass production of media regulation, the full-scale implementation of decadence regulation, and the censorship stance that prioritized national interests were accompanied, and the emulsion of colonial censorship was revived. Second, while the target of control has reached a potential threat, the target object of censorship advances to a level that collapses the social and cultural foundation. Third, as the status of the private self-governing body during the law of prosecutive emergency is re-located, control over popular culture and arts is totalized. Because they wanted to use popular culture and art as a political means of all-out security based on legal organization, negative control had to prevail over the versatility of propaganda. However, despite the tangible results of coercive control over society and culture following full-scale censorship, the biggest obstacle that offset this was the sound people who aspired for liberal democracy. This is why the law of prosecutive emergency had to be extended indefinitely.

참고문헌 (36)

  1.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한국언론법령전집: 1945-1981", ~ (1982)
  2. 권혜영, "유신헌법상 긴급조치권과 그에 근거한 긴급조치의 불법성", 법학논집, 14(2), pp.181~221 (2009), 법학연구소
  3. 김경일,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70년대" (2016), 창비
  4. 김경재, "혁명과 우상 : 김형욱 회고록 4" (2009), 인물과사상사
  5. 김삼웅, "민족 민주 민중 선언" (1984), 일월서각
  6. 김삼웅, "한국곡필사(2) : 유신시대의 곡필" (1990), 신학문사
  7. 김언호, "책의 탄생(2)" (1997), 한길사
  8. 김용섭, "행정입법과 그에 대한 통제", 경희법학, 34(2) (1999), 경희대 법학연구소
  9.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992), 동아일보사
  10. 김행선,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문화정책과 문화통제" (2012), 선인
  11. 리영희,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대화" (2005), 한길사
  12. 문지영, "지배와 저항 :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2011), 후마니타스
  13. 문화공보부, "문화공보30년", 문화공보부, ~ (1979)
  14. 방송윤리위원회, "방송윤리심의편람", ~ (1975)
  15. 법원, "판례상 인정된 이적표현물(도서, 유인물) 목록", ~ (1999)
  16. 윤재민, "금서", 신동아, ~ (1985)
  17. 이강민, "70년대 ‘문제’ 딱지 붙은 책들", 정경문화, ~ (1984)
  18. 이봉범, "1960년대 검열체재와 민간검열기구", 대동문화연구, (75), pp.413~478 (2011), 대동문화연구원[DOI]
  19. 이봉범, "검열국가 대한민국과 표현의 자유", 내일을 여는 역사, 79 (2020), 내일을여는역사재단
  20. 이상록,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70년대" (2016), 창비
  21. 이성욱, "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2004), 생각의 나무
  22. 이승희, "‘藝倫’의 역사적 추이와 제도적 임계", 민족문학사연구, (63), pp.284~322 (2017), 민족문학사연구소
  23. 이승희, "「공연법」의 성립―식민지 유산과 냉전의 동학", 한국극예술연구, (73), pp.125~168 (2021), 한국극예술학회[DOI]
  24. 정규진, "한국정보조직" (2013), 한울
  25. 정근식, "(탈)냉전과 한국의 민주주의" (2011), 선인
  26. 정근식, "해방 후 검열체제의 연구를 위한 몇가지 질문과 과제 ―식민지 유산의 종식과 재편 사이에서(1945~1952)", 대동문화연구, (74), pp.7~60 (2011), 대동문화연구원[DOI]
  27. 정주진, "중앙정보부의 탄생" (2021), 행복에너지
  28. 조상호,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 (1999), 나남출판
  29. 조이스 캐롤 오츠, "위험한 시간 여행" (2019), 북레시피
  30. 조준형, "총력안보 시대의 영화 -1970년대 초 안보영화의 함의와 영향", 상허학보, 62, pp.245~288 (2021), 상허학회[DOI]
  31. 조현연, "한국 현대정치의 악몽-국가폭력" (2000), 책세상
  32. 최창권, "가요사에 남을 금지가요 해금", 공연윤리, 131 (1988), 한국공연윤리위원회
  33.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결정목록(1970.2~1979.12)", ~ (1970)
  34.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006), 한길사
  35. 허은,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70년대" (2016), 창비
  36. 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 (2012), 창비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2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