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간도협약의 역사적 쟁점과 일본의 책임

间岛协约的历史争论與日本的责任 The Historical Dispute of the Gando Agreement and the Historycal Responsibility of Japan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於1909年中(清)日之间所签订的间岛协约到底为何到现在仍然引起争论? 该文主要分析了两点, 一为间岛协约所引起的历史争论是什麼, 二为为何追问使日本应要付出历史的责任. 间岛协约的历史争论点主要侧重於签约间岛协约的日本有無权利代理韩国的外交权與由於中日之间协商的结果而確定的中韩之间的近代国境线, 到底留下有何争论. 再来将要考虑的是间岛地区朝鲜人的法律地位问题. 间岛协约的内容可说明了, 除了在第一条的中韩两国的国境线问题以外, 第三条 · 第四条 · 第五条的朝鲜人居住权 · 裁判管辖权 · 不动产所有权等的法律地位. 第二条與第七条的关於日本领事馆设置的原因, 表面上是为了保护朝鲜人, 不过实质上日本人任意规劃或推进的‘保护朝鲜人的政策’, 引起了清朝的强硬归化要求, 反而朝鲜人的法律地位更为难保. 1909年所签约的间岛协约所规定的朝鲜人的法律地位與间岛协约签订後再签约的各種条约的目的根本不在於保护朝鲜人的法律地位. 随着中日两国的需要而解释與适用的结果蹂躏了朝鲜人的人权实质上使朝鲜人变为無国籍者. 於19世纪後期日本通过多样方法调查了鸭绿江與豆满江周围, 具體表示了对间岛问题的关懷. 1901年以前日本已经开始收集了关於间岛的资料, 日俄战争後为了调查间岛地区與绞尽脑汁想对策而积極的派遣了工作人员與设置了统监部临时间岛派出所. 另一方面韩国政府为了保护间岛地区的朝鲜人付出了不少努力, 则为於1901年建立了边务警务署與1902年派遣了间岛视察使(间岛管理使, 1903年)等, 然而日本把韩国政府的所为将变为無用之物. 该文探讨日本应负历史责任的原因, 一为如果日本忘却了历史的责任会唤起第二历史蠻行; 二为日本由於签约了非法条约而蹂躏的人权应要负人道责任; 三为若無历史上政治上的和谐很难追求东亚共同的未来.

참고문헌 (60)

  1. 노계현, "간도협약에 관한 외교사적 고찰", 국제법학회논총, 11(1) (1966)
  2. 이일걸, "간도협약에 관한 연구: 한·중 영유권분쟁을 둘러싼 일·청 교섭과정을 중심으로", 박사, pp.1991
  3. 최장근, "간도협약과 일본의 음모", 통일로, 99 (1996)
  4. 권기훈, "1904년-1910년 한일간의 제조약의 효력에 관한 연구: 강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인 점을 중심으로", pp.1986
  5. 이일걸, "간도협약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국제법학회논총, 72 (1992)
  6. 김정호, "국제법상 청일간도협약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논총, 16 (2000), 명지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7. 이민효, "국제법상 강박조약의 무효론에 비춰 본 간도협약의 효력과 간도영유권 논쟁", 해양전략, 126 (2005)
  8. 남동현, "간도협약의 국제법적 효력과 Cyber VANK의 기능", 과학기술법연구, 11(2), pp.243~299 (2006), 과학기술법연구원
  9. 이성환, "간도협약과 한일합방", 대한정치학회보, 8(1) (2000)
  10. 김지환, "間島協約과 日本의 吉會鐵道 부설", 중국사연구, (34), pp.251~286 (2005), 중국사학회
  11. 최덕규, "제국주의 열강의 만주정책과 간도협약(1905-1910)", 역사문화연구, (31), pp.203~242 (2008), 역사문화연구소
  12. 노영돈, "소위 청일 간도협약의 효력과 한국의 간도영유권", 국제법학회논총, 78 (1995)
  13. 박선영, "한중 국경획정의 과거와 현재: 유조변, 간도협약, 북중비밀국경조약 분석을 중심으로", 북방사논총, 4 (2005)
  14. 이성환, "간도 영유권 문제 해결을 위한 시론(時論)적 연구 - ‘간도협약’의 재검토를 통해서 -", 동북아 문화연구, 1(14), pp.563~588 (2008),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5. 유병호, "재만한인의 국적문제 연구(1881-1911)", 박사, 사학과, pp.2001
  16. 權寧俊, "近代中國의 國籍法과 朝鮮人歸化政策", 한일민족문제연구, 5 (2003)
  17. 김택중, "19세기말 한중 양국의 조선족 정책", 인문논총, 11 (2003)
  18. 정지호, "民國時期 東北地域 朝鮮人의 法的地位", 중국학보, (58), pp.277~300 (2008), 한국중국학회
  19. 이상찬, "을사조약이 아니라 한일 외교권 위탁 조약안이다", 역사비평, (겨울), pp.37~ (2005)
  20. 이태진,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과 조약 강제: 한국 병합 불성립을 논함", 한국사시민강좌, 19 (1996), 일조각
  21. 이태,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 (2001), 태학사
  22. 이태진, "한국병합의 불법성 연구" (2003), 서울대학교 출판부
  23. 이상찬, "을사조약과 병합조약은 성립하지 않았다", 역사비평, (겨울) (2005)
  24. 이태진, "한국병합과 현대: 역사적 국제법적 재검토", pp.12~ (2009), 태학사
  25. "조선일보", ~
  26. 박선영, "歷史의 運命-間島協約 締結의 歷史와 現場-", 중국사연구, (49), pp.261~273 (2007), 중국사학회
  27. "日本外交文書", ~
  28. 이규수, "일본의 간도영유권에 대한 인식과 통감부 임시간도파출소", 담론201, 9(1), pp.63~96 (2006), 한국사회역사학회
  29. 金春善, "延邊地區朝鮮族社會的形成硏究", pp.144~146 (2001), 吉林人民出版社
  30. 孫春日, "‘滿洲國’의 在滿韓人에 대한 土地政策硏究", pp.139~146 (1999), 백산자료원
  31. 小林玲子, "韓国併合前後における間島居住朝鮮人の法的地位と帰化政策", 朝鮮學報, 197, pp.54~55 (2005)
  32. 中華民國國民政府外交部, "說帖第5號關於朝鮮人在東北各省之地位之說帖(中日問題之眞相: 參與國聯調査團中國代表提出之29種說帖(1932.4-8)" (1975), 學生書局
  33. 森山茂徳, "明治政治史における朝鮮問題 in:日本近代史における転換期の研究" (1985), 山川出版社
  34. 井上, "日本帝国主義と間島問題: 1910年代・20年代前半", 朝鮮史研究会論文集, 10 (1973)
  35. 樣昭全, "中朝邊界沿革" (1994), 吉林文史出版社
  36. 黃紀蓮, "中日‘二十一條’交涉史料全編(1915-1923)" (2001), 安徽大學出版社
  37. 申奎燮, "帝國日本の民族政策と在滿朝鮮人", 박사, pp.2002
  38. 신각수, "국경분쟁의 국제법적 해결에 관한 연구", 박사, pp.1991
  39. 김찬규, "간도의 영유권", 한국북방학회논집, (창간), pp.67~83 (1995)
  40. 노영돈, "청일 간도협약의 무효와 한국의 간도 영유권", 간도학보, (창간), pp.159~167 (2004)
  41. Mark W. Zacher, "The Territorial Integrity Norm: International Boundaries and the Use of Force in: International Law and International Relations", pp.288~289 (2007), Cambridge University Press
  42. Brownlie, I., "African Boundaries" (1979),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43. J. Crawford, "The Creation of States in International Law" (1979)
  44. 이한기, "한국의 영토: 영토 취득에 관한 국제법적 연구" (1969), 서울대학교 출판부
  45. 박선영, "秘密의 解剖-朝鮮과 中國의 國境 條約을 中心으로-", 중국사연구, (38), pp.195~224 (2005), 중국사학회
  46. 中央檔案館, "中共中央文件選集(1949)" (1992), 中共中央黨校出版社
  47. 김명기, "조·중 국경조약과 간도: 간도 영유권 회복이 최상의 민족적 소명이며 국민적 성찰이 필요", 북한, pp.28~ (2008)
  48. 小林玲子, "19世紀末における淸 日間の朝鮮半島分割論: 19世紀末における日本の朝淸國境地帶調査を中心に", 대한민국 영토분할 시도와 그 대응의 역사: 지정학적 숙명론 극복과 통일전망 , 2009년 12월 10일 국제학술회의 발표 원고 (2009)
  49. 內騰虎次郞, "『內騰全集』 제6권" (1972), 筑摩書房
  50. 篠田治策, "白頭山定界碑", pp.293~ (1938), 楽浪書院
  51. 森山茂徳, "近代日韓関係史-朝鮮植民地化と国際問題" (1987), 東京大学出版会
  52. 小林玲子, "19世紀末-20世紀初韓中関係: 間島における朝鮮人保護政策", 중국사학회 제10회 국제학술대회발표논문 (2009), 동아대학교
  53. 김용희, "B.C급 전범재판과 조선인", 법학연구, (27), pp.513~535 (2007), 한국법학회
  54. 法務大臣官房司法法制調査部, "戰爭犯罪裁判槪史要", pp.34~ (1973), 法務省
  55. 韓國出身犯罪者同進會, "在日韓國出身戰犯者名簿" (1957)
  56. 사누키 히로시, "(특별기고) 피폭ㆍ패전 60년, 동아시아 평화를 향한 일본의 책임을 생각한다", 역사교육연구, (1), pp.257~269 (2005), 한국역사교육학회
  57. 송충기, "독일의 뒤늦은 과거청산: 나치하 외국인 강제노역자에 대한 보상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73), pp.271~293 (2005), 역사문제연구소
  58. 안병욱, "과거청산, 왜해야 하나?", 내일을 여는 역사, 18, pp.23~ (2004)
  59. 김유경, "기억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 ―`독일-프랑스 및 독일-폴란드의 역사교과서 협의`―", 역사비평, 59(여름), pp.363~385 (2002), 역사문제연구소
  60. 박재영, "교과서 협의를 통한 독일의 과거극복", 사회과교육, 45(3), pp.61~89 (2006),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