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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滅亡 後 遼東에 再建된 高句麗

After the Fall of the Koguryo Dynasty, Reconstruct Koguryo Kingdom in Liao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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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년 거란족이 당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비록 거란족의 반란은 오래가지 못하고 진압되었지만 거란의 반란은 주변 여러 민족의 독립의지를 자극한다. 거란반란의 중심지인 영주지역은 여러 민족이 공동생활, 교류하는 융합의 거점으로 민족구성이 복잡해 당으로서도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었다. 특히 고구려 멸망 후 당조정은 고구려유민을 집단으로 이 지역에 이주 시켰다. 이로 인해 당시 영주 및 그 주변에는 많은 고구려유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중에 고구려유민 대조영은 거란의 반란을 기회로 영주에 거주하던 고구려유민을 거느리고 동진하여 震을 건국한다. 그러나 대조영세력이 영주를 떠난 뒤에도 여전히 많은 고구려인이 영주와 요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조정은 거란반란 이후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더 이상 통치할 여력이 없었다. 이로 인해 당조정은 부득이 요동에 거주하는 고구려인의 자치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요동에 거주하던 고구려인을 중심으로 요동에 고구려인의 자치지역이 탄생했다. 당조는 요동고구려인에게 자치권을 주고 羈縻州로 삼아 돌궐, 발해와의 사이에 완충지역으로 삼고 간접통치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동북지역을 둘러싼 정세의 변화로 遼東高句麗國은 당의 통제에서 이탈하였다. 비록 遼東高句麗國이 당의 통제에서 벗어났지만, 그 세력이 미약해 국가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국들도 자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遼東高句麗國을 병합하는 것보다는 완충지대로 남겨놓고, 때때로 이용하려고 하였다. 遼東高句麗國은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이용해 동북지역의 주도세력이 바뀔 때마다 다른 세력에 稱臣하며 장기간 명맥을 유지하였다.

Abstract

After the Fall of the Koguryo Dynasty, Reconstruct Koguryo Kingdom in Liao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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