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 후기 皇位 繼承의 樣相과 宣宗의 즉위 -長子 명분을 중심으로
Aspects of the Imperial Succession of the Late Period Tang Dynasty and the Crowning of Emperor X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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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이 皇太叔의 신분으로 황위에 오른 것은 唐代뿐만이 아니라 중국사 전체에서도 매우 특수한 현상이었다. 전통 시기에 통용된 嫡長子에 의한 황위 계승이라는 관념에 투영해 볼 때, 선종의 즉위는 그 자체로 예외적이었다. 기존 연구에서 이것은 당 후기 환관 세력의 정치 참여라는 시각에서 고찰되었고, 그 결과 황위 결정에 깊게 관여했던 환관 세력이 미래 권력의 장악을 위한 조치로 이해되었다. 즉, 무종 말기 태자가 존재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환관 세력이 전횡을 부려 태자를 폐출하고 능력이 부족[不慧]한 光王 李怡를 옹립하여 권력 장악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종 즉위의 전후 상황을 검토해보면, 그의 즉위에 별도의 배경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감지된다. 이와 관련해 기존 태자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年少’함을 지적한 것이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것이 곧 皇太叔의 ‘年長’함이 갖는 명분을 대비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종의 ‘年長’함이 황제의 즉위 과정에서 명분으로 일정하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문화적 공감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개별적 사건에 의해 즉발적으로 발생하기보다는 통시적 흐름 속에서 경험적 축적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이전 황위 계승의 연속된 흐름 속에서 선종의 즉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종의 부친 헌종은 ‘永貞改革’의 정치적 격변기에 순종의 측근 세력과 환관 세력의 대립 상황에서 환관 주류 세력들이 주장한 적장자 명분에 의거해 태자로 책봉되고, 이어 황위에 올랐다. 이러한 황위 계승의 양상은 헌종의 즉위에 始演된 것이 아니라 순종의 상황에 연이어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적장자에 의한 황위 계승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헌종은 후계자 선정에 있어 적장자 遂王 李宥가 아니라 庶子 출신의 長子 李寧을 태자로 책봉했다. 비록 李寧이 사망함에 따라 실제의 황위 계승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헌종 시기 嫡子와 長子의 명분이 분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종적으로는 적자 遂王 李宥가 태자에 책봉되어 穆宗으로 즉위하였지만, 그 사이에 長子의 명분을 강조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이후 목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擊鞠의 사고 장면을 목격한 것이 원인이 되어 와병하였고, 이에 태자의 조속한 책봉을 위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이때 태자의 연령 문제가 유의미하게 거론되었다. 또한 환관 王守澄 등이 정적 제거를 위한 조작 사건을 꾸미는 과정에서도 장자의 명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목종의 5년이라는 짧은 재위 이후, 長子인 景王 李湛이 태자를 거쳐 황위에 올라 敬宗이 되었다. 태자가 아직 책봉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차례에 걸쳐 궁중 정변이 발발했고, 두 번째 정변에서 경종이 劉克明에 의해 시해되었다. 정변의 주도세력은 헌종의 아들인 絳王 李悟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였는데 이는 장자 명분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당시 궁중 내 주류 세력인 왕수징 등은 정변을 진압하고 새로운 황위 계승자를 옹립했는데 경종의 아들이 아닌 목종의 아들 江王 李涵을 내세웠다. 계위자의 조건으로 嫡子보다 長子의 명분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결과라 하겠다. 李涵이 문종으로 즉위한 이후 태자의 책봉 문제는 궁중 내 여러 세력들의 갈등 속에서 쉽게 결정되지 못했고 결국 敬宗의 5子인 陳王 李成美가 태자로 책봉되었지만 불과 한 달여만에 또 한 차례 궁중 정변이 발발했다. 이때 환관 仇士良 등이 陳王을 廢하고 潁王 李瀍을 皇太弟로 삼아 황위 계승자로 옹립한 것이다. 潁王이 皇太弟가 되는 과정에서 태자 진왕의 年少함이 재차 지적되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皇太弟의 계위가 이어질 수 있었다. 年盛하다는 측면에서 長子의 명분이 재확인된 것이다. 武宗 李瀍은 태자를 책봉하지 못한 상황에서 도교에 탐닉하여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이때 환관 馬元贄에 의해 황위 계승자가 선정되었고, 33세의 光王 李怡가 皇太叔으로 國政을 맡아 결국 선종이 되었다. 皇太叔이라는 예외적인 자격을 가진 황제인 선종의 즉위는 당 후반기 累代를 거치며 황위 계승자의 선정에 고려되었던 長子 명분의 경험적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선종은 태자의 책봉에 三子인 夔王 李滋를 염두에 두었지만, 재위 기간 동안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결국 사망할 즈음에 近臣 환관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환관 王宗實이 矯詔로 장자인 鄆王 李溫을 태자로 삼아 황위에 오르게 했다. 장자 명분은 선종 시기에도 황위 계승의 명분으로 주요하게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당 후기는 전기와 달리 황위 계승자의 선정에 장자 명분이 시종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양상은 환관 세력이 황위 계승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발현되었다. 선종의 즉위 원인에 대한 기존 설명에서 짐작되듯, 幼沖한 계승자의 선정이 이른 바 권력을 竊取하는 환관들의 득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적인 추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당 후기에 장자 명분이 적용되어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황위 계승자의 선정이 연이어 이루어졌다. 이는 後漢代 환관 권력이 未成年 황제를 둘러싸고 권력을 농단했던 사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상황은 당 후기 황위 계승의 양상 문제를 황제와 환관의 관계를 통해 추론해보게 한다. 당대 환관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현종 시기에 高力士로 대표되는 환관 세력의 성장을 통해 시작되었고, 이후 樞密使를 통한 행정 분야의 개입과 護軍中尉에 의한 군권 장악으로 이어졌다. 주지하듯 환관 세력의 성장은 使職의 增設이라는 배경 하에 경제, 사회 분야의 內諸司使 및 군사 분야의 監軍使에 의해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제도적 지원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사직은 당대에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변화된 정치, 사회적 환경에 대응하는 방편으로 기능했고, 황제들은 이를 통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국가 통치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안사의 난 이후 당조의 국정 운영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당 후기 황제들은 비록 번진의 발호 및 주변 민족 세력의 흥기로 인해 정치적 불안을 겪기도 했지만, 일정하게 권력의 전제화를 위해 노력했고 이것의 연장선에서 환관 세력도 활용된 면이 있다. 다시 말해, 당 후기 황제의 통치 과정에서 환관의 활동이 확대되었고, 환관 사직의 발전은 황제가 국정을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하나로 작동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인식을 긍정할 수 있다면, 당 후기 환관들은 황제의 권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수록 스스로의 정치적 지위 또한 동반하여 지속한다고 여겼을 개연성이 있다. 때문에 설사 嫡統에 근거하여 즉위했더라도 나이 어린 황제에 의한 불안정한 통치보다는 황위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年盛한 황제에 의한 통치가 환관 세력의 유지에 유리했을 것이다. 즉, 繼位者의 非固定性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황위 계승의 安定性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後漢代와 비교해, 唐 후기는 황권을 둘러싼 환관들의 권력 시행이 사직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로 일정 수준에서 시스템화했기 때문에 年盛한 황제의 등장이 시스템의 운영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年少한 황제의 등장은 변화된 시스템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여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당 후기에 새로운 형태의 통치 구조가 完善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Abstract
The ascension of Emperor Xuan as the Huang Tai Shu(皇太叔) to the throne was a very exceptional phenomenon not just in the Tang Dynasty but also in the whole history of China. The existing research has studied in the perspective of 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the Eunuch in the late Tang Dynasty, and as a result it was understood that the Eunuch who was deeply involved in the decision of the throne was to crown Emperor Xuan as the emperor for the purpose of seizing future power. However, should the situation prior and post to the accession of Emperor Xuan be considered, there is a possibility of another separate background that could have applied regarding the ascension. For this, there is the need for an understanding of the accession of Emperor Xuan in the continuum of succession to the throne. If we were to trace the aspect of succession to the throne that led from Emperor Xian, Emperor Mu, Emperor Jing and to Emperor Wu, it can be seen that the notion by which the Eldest son(長子) inherits the throne has been actively utilized. Furthermore, several coups and rebellions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also confirm the use of the concept of succession by the eldest son. Should we see this as the setting, Emperor Xian being able to ascend the throne as being the uncle of an emperor was because the cause identified by experience accumulated to that day or in other words, the concept of the eldest son to be the next in line to the throne was in common use. Interestingly, however, this aspect emerged while the Eunuch were directly involved in the succession of the throne. As the original explanation of the accession of Emperor Xuan shows, despite the logical assumption that the selection of a young heir would help the so-called eunuch political power, in reality, we are able to see that the selection of heirs to the throne with the justification as the Eldest son was applied in the late Tang Dynasty. This is in stark contrast to the situation in which the Eunuch in the late Han Dynasty took control by crowning an underage emperor themselves. In the latter part of the Tang Dynasty, it is also understood that the Eunuch attempted to strengthen their power on the basis of enthroning emperors that are of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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