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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太宗 晩年의 家政과 政治: 太子廢立紛爭의 歸趨와 父帝의 苦惱

The Process and Issues of Dispute over the Crown Prince in the Latter Part of the Zhenguan Period of Ta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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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관 후기의 정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몰고 온 것은 태종의 後嗣를 둘러싼 분쟁과 그 끝에 벌어진 태자 폐립 사건이었다. 그 자체로 중요한 皇儲 문제가 파행으로 전개됨에 따라 태종 본인의 심리에 미친 영향은 말할 나위 없고, 향후에 나타난 직간접적인 파장은 실로 지대했다. 태종의 後嗣 분쟁은 이 점에서 정관 후기 정치사의 최대 핵심이었다. 또한 이로부터 豪言自大를 과시해오던 태종에게 고뇌와 좌절에 의한 그늘진 모습이 엿보이는 점도 피할 수 없다. 이 사건은 공교롭게도 자신에게 집권의 계기를 가져다준 ‘현무문의 변’과 본질상 너무 닮아 있었고, 그 점을 분명히 인식했을 태종이 집권 만년에 품은 감회는 상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태종은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최선의 해결책을 얻으려 했지만, 사태가 그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당 태종에게 막연히 따라붙는 ‘완벽’의 선입관은 적어도 정관 후기에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이 시기 그가 보여준 여러 시행착오와 자식에 대한 부친의 염려 등으로부터 우리는 ‘명군’ 또는 ‘千古一帝’ 이미지에 감추어진 그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본문에서는 그동안 ‘현무문의 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감이 있는 정관 후기 태종 後嗣 분쟁의 정치적 배경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 간의 대립과 음모, 그리고 태종의 그에 대한 입장까지를 분석할 것이다.

Abstract

The case of the abolition of crown prince and the subsequent event of struggles for the replacement among sons of Tang Taizong was a vital things that directly affect the flows of politics in the latter part of the Zhenguan Period. It also gave Taizong a significant affect in terms of his psychology including mental agony and frustration. This incident, as irony would have it, very much resembles the case of Xuanwu Gate Incident(玄武門之變) which also happened among sons of Gaozu and was intrigued by Li Shi min(Taizong). Therefor, Taizong’s concerns for children’s long and bitter dispute was very special and tried to find out the best way of solution for it, but he couldn't make of it mainly because of his indecisive attitude. However, we can get a sense of humane characters well from his trials and errors and father’s concerns for children which was hidden in the perfect image of wise monarch. This essay will try to depict the political background of the dispute and confrontation and conspiracy among Taizong’ sons and their parties, including from Taizong’s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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