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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邊境地域의 藩鎭과 對外關係 - 東北邊境地域에서 邊境政策의 變化와 관련하여 -

The Frontier Fanzhen(藩鎭) and Foreign relations in the Ta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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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唐代 동북변경지역에서의 기미체제와 그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唐은 武德年間부터 內附한 주변민족을 府나 州로 편제하여 통치하는 羈縻政策을 실시하여 변경의 안정을 확보하려 하였다. 羈縻州의 통치는 기본적으로 기존 부족 수령의 통치를 인정하여 자치를 허용하는 한편 이들을 中國式 행정체제로 편제하여 주변에 있던 正州 都督의 감시·감독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기미주의 주민은 州의 설치와 함께 城傍에 소속되어 唐의 군사행동에 동원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武后 萬歲通天元年(696) 발생한 契丹首領 李盡忠과 歸誠州刺史 孫萬榮이 연합한 반란으로 파정을 맞이하였다. 거란 반란이후 唐은 변경지역의 군사역량을 강화하고 이민족 사회 업무를 전담하기 위한 軍鎭과 押蕃使를 설치하였다. 李盡忠․孫萬榮의 반란으로 기미주에서 이탈했던 契丹과 奚가 開元4年(716) 다시 내부한 것을 계기로 唐은 영주지역에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押蕃落使를 설치하고, 이듬 해 平盧軍을 설치하였다. 押蕃落使와 平盧軍은 營州都督의 지휘아래 羈縻州를 감독하고 안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주로 기미주 사회의 동향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전의 도독부을 중심으로 기미주를 감독하고 안무하던 관리체제에서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방어체제로 전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변경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행사하겠다는 것보다는 이들을 방어하여 변경지역의 안정을 확보하겠다는 정책 기조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이러한 軍事的 방어체제는 開元7年(719)에 설치된 平盧節度使를 중심으로 강화시켜 나갔다. 唐은 平盧節度使의 관할지역을 營州와 遼州, 燕州까지 확대시키고, 병력을 늘려 군사적 대응력을 강화하고, 管內諸蕃使를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平盧軍은 기존의 押蕃落使와 신설된 管內諸蕃使에게 이민족 관련 업무를 분담하였다. 諸蕃部落使는 내부한 管內의 羈縻州의 주민과 관련된 일반적인 업무를 押蕃落使는 羈縻州의 주민의 문제를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諸蕃使와 押蕃使는 營州都督이 존재하였으나, 이 모든 職을 節度使가 兼職하였기 때문에 변경지역에서 이민족 업무가 藩鎭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唐이 방위체제를 강화해 나가던 시기의 동북지역의 형세는 기존의 契丹과 奚 외에, 渤海와 黑水靺鞨이 성장하여 변경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신라와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대외업무가 증가했다. 때문에 동북지역의 이민족 업무는 營州와 幽州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開元28年(740) 平盧節度使가 押兩蕃渤海黑水使를 兼職하게 한 후 이어 天寶元年(742) 幽州節度使가 押奚契丹兩蕃使를 兼職한 것은 기존의 契丹과 奚는 幽州가,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渤海와 黑水靺鞨은 平盧가 각각 담당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업무의 분담은 安史의 亂 중 平盧軍이 산동반도에 있던 靑州로 移鎭한 후, 肅宗 永泰元年(765) 平盧淄靑節度使가 押新羅渤海兩蕃使를 兼職하여 고정되었다.

Abstract

This study sheds light on the jimi(羈縻) system and its change process of the northeast border areas in Tang(唐) Dynasty. From the beginning, Tang Dynasty organized the surrendered into Fu(府) or Zhou(州) and ruled them. Thereby, it intended to secure the stability of the border. This system, however, began to falter from the regime of Gaozhong(高宗) and came to an end due to the revolt of Li jin-zhong(李盡忠) and Sun Wan-rong(孫萬榮) in Xiedan(契丹). That' why Tang Dynasty should search for the new northeast border policy. It built up military strength and established a military camp(軍鎭) and Yafanshi(押蕃使) which assumed the tasks of neighboring peoples after the revolt of Xiedan. Although Yafanshi and Pinglujun(平盧軍) threatened and coaxed Jimizhou(羈縻州) under control of YingZhoududu(營州都督), they militarily coped with the trend to the society of Jimizhou. This means that the system of threatening and coaxing changed into military defense system. This military defense system was operated by Pinglujiedushi(平盧節度使) which was established in Kaiyuan 7th year(開元7年). While Tang Dynasty was strengthening its defense system, Bohai(渤海) and Heishuimohe(黑水靺鞨) besides Xiedan and Xi(奚) were also developing their own powers in the northeast regions, which caused military collisions at borders. Furthermore, its foreign affairs increased due to the increased exchange with Silla(新羅). Yingzhou(營州) and Youzhpu(幽州) thereafter shared the affairs related with the surrounding nomadic peoples at northeast areas. When Pingluziqingjiedushi(平盧淄靑節度使) simultaneously hold the other job of Yaxinluobohailiangfanshi(押新羅渤海兩蕃使) in Suzhong(肅宗) Period(765), this phenomenon got settled after Pinglujun moved to Qingzhou(靑州) in the Shandong(山東) Peninsula during An-Shi Rebellion(安史之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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