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漢初 官修 大事記類 記錄物의 書寫와 流行 - 荊州 胡家草場漢簡·歲紀를 중심으로 -
Writing and Popularity of Official Chronology in Qin and early Han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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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중국 고대 記事의 전통은 상주대부터 춘추전국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확립되었다. 하지만 진 통일 이후 육국의 사서은 모두 소실되고 진의 기록만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사마천이 『사기』에서 언급한 『秦記』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진기』는 전한 말 이래로 실전되어 지금까지 그 직접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 호북성 형주시 호가초장 12호 출토 한간의 歲紀가 나와서 주목된다. 歲紀는 진 소양왕에서 한 문제까지 국가대사를 기록하고 개인의 행적은 따로 기재하지 않아서 순수한 형태의 官修 기록물일 가능성이 크다. 본고는 현재 9매가 공개된 호가초장한간·歲紀를 진부분과 한부분으로 나누어서 『사기』와 수호지진간·葉書와 비교해 보았다. 이 3종의 비교에서 대략적인 사실은 크게 차이가 없어서 우리가 『사기』를 통해서 이해했던 진·한초의 역사는 큰 틀의 흐름에서 그대로 신뢰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부적으로 歲紀는 내용과 체제에서 『사기』와 『수호지진간』葉書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었다. 진의 大事 기록은 문공 이래 진의 중앙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었고, 아마도 이것이 『사기』가 참고했던 『진기』일 것이다. 진 멸망 이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한에서도 기록이 계속되었는데, 호가초장한간 歲紀를 보면 시간이 올라갈수록 간략해지고, 가까운 시기의 기록은 보다 상세해진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歲紀와 같은 大事 기록물은 編年의 방식으로 해마다 해마다 전쟁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元年 기사는 “시호+기년+立+재위연수+生+후계군주+大事”를 기본 형식으로 하고 있다. 원년 기사의 형식을 놓고 볼 때 수호진진간』葉書에 비해 호가초장한간·歲紀가 좀 더 원형에 가까운 형태일 것이다. 반면 歲紀에 비해 『사기』는 관련 기사를 좀 더 풍부하게 담고 있어서, 사마천이 보았다고 하는 『秦記』는 본래 진 중앙의 축적된 기록물 그 자체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호가초장한간·歲紀는 군주의 위세와 공업을 顯示하여 민의 威服을 서사의 목적으로 하는 재가공한 傳寫本이었을 것이다. 歲紀와 같은 官修 大事記類의 傳寫本은 중앙의 방대한 자료를 일정한 기준에서 재단하여 축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서 각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官修 傳寫本이 각 지방 관리들을 중심으로 전파되면서 또 여기에 바탕해서 개인이 다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좀 더 임의성을 가지고 서사한 私的 용도의 문서가 생산되는데 바로 수호지진간·葉書, 송백한간·牒書, 인대한간·葉書가 그러한 종류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한초 대사기류 기록물은 모두 진 소양왕 원년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바로 진 중앙 본래의 『秦記』에서 진 소양왕 원년을 기점으로 절취해서 다시 만들어진 傳寫本이었음을 방증해준다. 지금까지 출토된 진·한초의 대사기류 간독은 모두 진 통일 이후 진시황 시기 처음 만들어진 후 한초까지 계속 편년식으로 추가되었는데, 여기서 진 통일의 시작점이자 秦帝國 新皇室의 祖宗으로 소양왕을 위치지워서, 진제국 황실 新世系의 정당성·정통성을 顯示하려는 서사 의도를 읽을 수 있다. 大事記類 간독의 기록 내용은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그럼에도 일부 내용에 차이가 있고 축약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 이는 결국 최초의 권위 있는 중앙의 원형에서 시간과 지역이 멀어질수록 원심력이 작용하여 傳寫本의 제작은 좀 더 자유로워졌고 따라서 실제 傳寫하는 쪽의 목적에 맞게 변형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진시황에서 한초까지 진 중앙의 『秦記』 원형 자료를 공통의 來源으로 하면서, 서로 다른 서사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서사 주체가 제작한 다른 형식의 歲紀·葉書 같은 대사기류 기록물이 서사되어 유행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中國古代記事的傳統從商周到春秋戰國, 長期以來被廣泛確立. 但是, 秦統一以後, 戰國六國記錄全部消失, 只剩下秦的記錄, 就是司馬遷在《史記·六國年表》中所說的《秦記》. 但是, 司馬遷參考的《秦記》被失傳, 至今對其直接內容不得而知. 然而, 最近湖北省荊州市胡家草場12號墓出土的漢簡中包括《歲紀》備受關注. 分爲兩種類型的《歲紀》只記錄秦昭襄王至漢文帝時的國家大事, 而沒有另外記載個人行跡, 與現有的《睡虎地秦簡·葉書(編年記)》對國家大事和個人行跡一起記錄, 形成了鮮明對比. 也就是說, 《胡家草場漢簡·歲紀》很有可能是沒有附加個人增補的純粹形態的官修記錄物. 本稿將目前公開9枚《胡家草場漢簡·歲紀》分爲秦部分和漢部分,與《史記》·《睡虎地秦簡·葉書》進行了比較. 在這三種比較中可以看出記述的大致事實並無太大差異. 因此, 至少到目前爲止, 無妨仍然信任我們通過《史記》所理解的現有秦·漢初歷史的大框架. 但是, 從細節上看, 《歲紀》在內容和體制上具有區別於《史記》和《睡虎地秦簡·葉書》的特點. 司馬遷所撰《史記》以前, 至漢初繼續作為國家正式記錄記大事的傳統. 秦滅亡之後, 在漢代也以同樣的方式持續著記錄, 如《胡家草場漢簡·歲紀》, 則可以看到隨著時間的推移而變得簡略, 而近期的記錄則更加詳細的特徵. 特別之處在於, 秦滅亡以後自漢建國以來的記載並沒有全新開始, 雖然簡形制有所區分, 但從秦昭襄王開始, 從秦到漢一直進行連接記錄. 這樣的大事記錄以編年方式, 每年以戰爭相關記事爲中心進行記錄. 其中, 讓人矚目的是, 新君主即位之年, 即元年記事以諡號+紀年+立+在位年數+生+後嗣君主+大事爲基本形式. 因此, 僅從元年記事來看, 與只寫“昭王元年”的《睡虎地秦簡·葉書》相比, 《胡家草場漢簡·歲紀》說“昭襄王元年, 立五十六年. 生孝文王. 取宜陽”, 具備完整的基本形式, 可能更接近原型. 相反, 《史記》比《胡家草場漢簡·歲紀》記載了更豐富的相關記事, 司馬遷所見過的《秦記》很有可能是原本保管在秦中央的大事記錄本身. 與此相比, 《胡家草場漢簡·歲紀》是體現君主威勢·以敘事爲目的以一定形態再加工的傳寫本. 也就是說, 秦大事記錄是戰國以來秦擴張領土而最終滅亡六國的過程中, 將新佔領地內異民統合為新民的重要機制. 爲了符合這一目的, 對秦中央所保管龐大分量的大事記, 必要用一定標準進行裁剪重新製作, 以便容易攜帶和移動. 然後, 從中央的原大事記中縮略並傳寫形態的大事記, 給各地方傳送過去後, 由官員單獨持有或由地方官府保管. 在此基礎上,個人再次生產出符合自己目的·具有隨意性敘事的私人用途文件, 即《睡虎地秦簡·葉書》·《松柏漢簡·諜(葉)書》·《印臺漢簡·葉書》等. 然而, 這種大事記類記錄有一個共同點, 則都從秦昭襄王元年開始記錄. 如此恰巧都從秦昭王元年開始, 從側面反映了這些是以秦中央本來的《秦記》從秦昭王元年爲起點, 竊取並重新制作的傳寫本. 迄今爲止出土的秦漢大事史紀類簡牘都是可見在秦統一後秦始皇時期首次製作, 到漢初繼續以編年形式附加. 對此, 有可能涵蓋秦始皇想要將昭襄王配置為秦帝國新皇室祖宗的認識. 不可否認, 這些墓葬出土的大事記類可能是墓主生前持有的文件, 或者埋葬時用於陪葬而製作的可能性. 無論哪一種情況, 大事記類簡讀的記錄內容大體一致, 而一部分內容的體制細節上存在差異. 這種差異可能是時間越久或地方離中央越遠, 發生的離心力越大, 傳寫本的製作更加自由, 從而符合實際傳寫目的而變形的結果. 結果, 從秦始皇到漢初, 以秦中央的《秦記》圓形資料爲共同來源, 以不同的敘事目的, 敘事了多種敘事主體制作的其他形式的歲紀·葉書等大事類記錄物, 非常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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