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민요의 정치적 활용과 상업화 과정 연구
A Study on the Political Application and Commercialization Process of Folk Songs in the 1930s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연구는 1935년 『조선일보』가 진행한 ‘향토 노래 현상모집’을 통해 1930년대 민요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양상과 상업화되는 과정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35년 『조선일보』는 음반 회사인 오케레코드사(Okeh Record)와 합작하여 “조선 10대 도시 찬가 모집(朝鮮十大都市讚歌募集)”이라는 제목으로 향토 노래 현상모집을 진행하였다. 향토애의 배양을 공모의 목적으로 내세웠던 현상모집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향토 노래 현상모집이 있기 전 먼저 두 차례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지역 노래가 창작되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을 일본의 내지로 포함시키는 내지연장주의의 일환이었다. 그렇기에 『조선일보』의 향토 노래 현상모집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향토애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순수한 취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지역 노래 창작에 맞서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 것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조선일보』의 현상모집은 당시 유행하던 신민요를 내세워 음반을 발매한 오케레코드사의 상업적 흥행을 도모하였다. 이처럼『조선일보』의 향토 노래 현상모집은 일본의 지역 노래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의미와 신민요를 통한 음반사의 상업적 목적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political use of folk songs in the 1930s and the process of commercialization through the "Recruitment of Local Song Phenomenon" conducted by the Chosun Ilbo(朝鮮日報) in 1935. In 1935, the Chosun Ilbo collaborated with Okeh Record, a record company, to recruit local song phenomena under the title of "Recruitment of Choseon's Top 10 City Hymn". Another purpose seems to have been hidden in the recruitment of phenomena, which put forward the cultivation of local love for the purpose of the public offering. Before the recruitment of local song phenomena in the Chosun Ilbo, local songs of Joseon were first created by the Japanese twice, which was part of Japan's internalism of including Joseon as Japan's interior. Therefore, the recruitment of local song phenomena in the Chosun Ilbo contained not only the pure purpose of evoking local love in Koreans but also the political intention of confronting the creation of local songs by the Japanese. On the other hand, the recruitment of the Chosun Ilbo's status quo promoted the commercial success of the Oke Records company, which released the album with the popular new folk songs at the time. As such, the recruitment of local song phenomena in the Chosun Ilbo was an event in which the political meaning to counter Japanese local songs and the commercial purpose of the record label through new folk songs were complicated.
참고문헌 (20)
- "경성일보", ~
- "부산일보", ~
- "삼천리", ~
- "조선일보", ~
- "東アジア文化交渉研究", ~
- 김광우, "일제강점기 대중예술 활동의 디지털 큐레이션 모델 연구-오케레코드 사장 이철을 중심으로", 석사, pp.2020
- 박수현, "1930년대 한국 대중 음악 산업의 고찰 : 오케 레코드 사를 중심으로", 석사, 대중음악제작경영, pp.2005
- 배연형,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pp.442~ (2019), 지성사
- 송선형, "신민요의 전통음악적 구현에 대한 조명 -오케레코드 발매 신민요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56, pp.185~210 (2014), 한국국악학회
- 이혜원, "‘조선적인 것’을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시각 차이 연구 - 신민요와 지역 행진곡을 중심으로 -", 한국시가연구, 52, pp.129~159 (2021), 한국시가학회[DOI]
- 이치야마 모리오, "조선 민요의 연구" (2016), 역락
- 임다함, "대중 선전 장치로서의 미디어 이벤트 『경성일보(京城日報)』의 「경성고우타(京城小唄)」 현상모집(1931)을 중심으로", 일본연구, (30), pp.5~36 (2018), 글로벌일본연구원[DOI]
- 최성환, "海港都市 木浦의 藝鄕性과 가요 <목포의 눈물> 활용사례", 한국민족문화, (46), pp.313~344 (2013),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増田 周子, "日本新民謡運動の隆盛と植民地台湾との文化交渉 ― 西条八十作「台湾音頭」をめぐる騒動を例として―", 東アジア文化交渉研究, 1, pp.8~113 (2008), 関西大学文化交渉学教育研究拠点[DOI]
- "교토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URL]
-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URL]
- "한국 유성기음반 연구소"[URL]
- "유행가 앨범, <최초 부산 대중가요, 부산 노래(고복수, 이은파)>"[URL]
- "<44> 최초의 ‘부산노래’가 지닌 역사성과 의미, 나라는 잃었어도 노래마저 뺏길 순 없다…울분이 낳은 ‘부산노래’" (2022)[URL]
- "80여 년 전, 부산에서 한일 노래 대결이 펼쳐진 사연, 부산 대중가요 제1호(?) '부산노래'에 얽힌 이야기" (2021)[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