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재로서 원효 이야기의 재구성
Reconstruction of the Wonhyo(元曉)’s story as a Creative Mate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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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 승려에게 성인 만남은 절실했다. 성인 만남은, 다소 세속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득도(得道)의 확정이라는 점에서 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여기에 또 다른 의의를 부여할 여지가 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고, 본지수적(本地垂迹)과 불국토 사상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귀일(歸一)하는 사람이 원효(元曉)이다. 원효에게는 생애 동안 두 번의 선언이 있다. 첫째,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을 때,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르겠다’고 한 것. 제1선언이다. 둘째, 의상과의 도당행(渡唐行) 중 홀연히 돌아서며, ‘마음 바깥에 법이 없다’고 한 것. 제2선언이다. 순서는 파계 이후 도당(渡唐)이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도중에 돌아온 원효는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고 거리로 나섰다. 무애행(無碍行)은 원효에게 궁극의 깨달음이다. 두 번의 선언 끝에 무애행으로 이어지는 원효의 삶은 생전사후의 평가가 사뭇 다르다. 꺼리는 시골 승려에서 성인(聖人)의 반열로 승화한다. 그 변곡점은 중국과 일본에서의 높은 평가 그리고 그것이 신라 안으로 유입되는 때에 맞춰진다. 진정한 평가란 이렇듯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결정적으로 원효의 지위를 확인해 놓았다. 13세기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시대에 일연은 중국을 보되, 불교를 생각하되,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취해야 할 자세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원효의 발견이었다.
Abstract
It is acute for a priest of Silla as for the encounter of the saint. It is secular expression, but has the value that I cannot abandon at the point called the decision of the profit degree. The person that we are united into one eventually here is Wonhyo(元曉). In Wonhyo, there is 2 degrees declaration. During the life of Wonhyo there are two declarations. First, birth to Seolchong(薛聰), “I will cut the pillars supporting the sky.” Second, turn around go to China, he said, “There is no law on the outer mind.” Returned on the way, Wonhyo went to the town. It is a start of Muaehaeng(無碍行). 2 degrees declaration, life of Wonhyo leading to Muaehaeng again are totally different in a post mortem evaluation during the lifetime. He sublimate in a group line of the saint from a priest of country. The point of inflection is the time when high evaluation and that of China and Japan flow in Silla society. With the genuine evaluation, It needs time in this way. There is not the person that one of Wonhyo is dramatic, and one of a life of Wonhyo does not have a dramatic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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