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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있어서 불교와 국가 - 원효를 중심으로 -

Buddhism and the State in Silla Kingdom -The Case of Won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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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종교학

초록

6, 7세기의 신라시대에 불교는 국가나 왕실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 왕 실의 적극적인 옹호 아래 불교는 발전하였고 높은 귀족 출신의 다수의 고 승들이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서 정치적인 면에 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라 시대 대표적인 불교사상가 중의 한 사 람인 원효의 경우는 어떠한가? 원효는 무열왕의 사위로 알려져 왔다. 『삼국 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요석궁의 과부 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았 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는 대중 속에서 파격적인 행동을 하면서 대중을 교 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원효가 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았다고 하는 『 삼국유사』의 기록은 『향전』의 기록을 일연이 옮겨 적은 것인데 신빙성이 약하다. 그 이유는 먼저 자료상의 의문점인데 Buddhism, State, Wonhyo, King, Marriage, Princess 이외의 다른 원효의 전기들에서 이에 관련된 기록을 하나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의 전기 를 전체적으로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는 『행장』이나 <서당화상비>에서 이 와 관련된 사항을 볼 수 없고 『송고승전』의 원효 전기에서도 이에 관한 언 급은 없다. 설총의 전기를 기록한 『삼국사기』 열전에서도 설총이 어머니가 공주라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음으로 엄격한 골품제 사회인 신라 에서 육두품 또는 오두품 출신인 원효와 진골이었을 공주와의 결혼은 믿기 어렵다.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했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원효와 공부의 결혼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향전』에 전 해져 오던 설화적인 얘기라고 판단된다.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환속하여 거사로서 살 았다. 그리고 민중 속에 들어가 불교의 대중화에 노력하였다. 이론적으로 높은 수준의 저술들을 남기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적인 불교의 실천 자로서도 중요한 것이 원효이다. 민중 속에서 활동하고 자유분방하여 걸림 이 없던 원효는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원효는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 올바른 법에 의한 정치를 하여야 한다고 보 았다. 왕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고 잘못을 하면 그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고 보았다. 절대 왕권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Abstract

The connection was inseparably made between the ruling class and Buddhism in the 6-7th century in Silla Kingdom. Over many generations, the kings of the dynasty had relied on the assistance of Buddhism in their ruling the country. And with the support of the kings, Buddhism of Silla flourished. Buddhist monks who we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royal family had influence on the politics. Wonhyo(元曉; 617-686), one of the most important Buddhist thinker in Silla Kingdom, made a contribution to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What kind of connection did Wonhyo have with the royal family? According to Samgukyusa(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 (三國遺事), Wonhyo got a son called Seolchong(薛聰) from the widowed princess of Yoseokgung(瑤石宮). But the record of Samgukyusa that Wonhyo got a son from the princess is not reliable. The reasons are twofold: First, we have doubts about the material. The record of Samgukyusa was derived from Hyangjeon(鄕傳)(A local document). We don’t know about Hyangjeon. As a historical document, the reliability of Hyangjeon is not that high. No records of this marriage were kept except in Samgukyusa. That is, the biography of Wonhyo in Songgoseungjeon (宋高僧傳) and Seodanghwasang-Bi(誓幢和上碑) showed no record of this marriage. Second, Wonhyo differed in social standing from the princess. Silla had a rigid class system referred to as Golpum(骨品) system. Such a misalliance was not permitted under that system. When young, Wonhyo had become a monk. After breaking his vow and begetting Seolchong, he put on lay clothes. Wonhyo returned to secular life in order to become a ‘grihapati’(居士), and then he converted himself to the teaching of masses. Without scheduling or restriction, he did so as he pleased according to the occasion. He was not in close connection with the royal family or ruling class. Wonhyo said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in ruling the kingdom was right dharma(正法) and that if a king committed a serious fault, he might lose his 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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