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湖南地域 士林들의 華陽九曲 探訪과 華陽九曲詩 - 趙鍾悳과 趙愚植을 중심으로 -

Honam district(湖南地域) Sarims’(士林) Hwayanggugok(華陽九曲) visit(探訪) and Hwayanggugok poem(華陽九曲詩) - Centering of Jo, Jongdeok(趙鍾悳) and Jo, Usik(趙愚植) -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趙鍾悳(1858~1927)과 趙愚植(1869∼1937) 두 사람은 尊師意識과 尊周大義意識을 공고히 하고 실천하기 위해 화양구곡을 탐방했다. 그리고 시를 지어 그 의식을 강화 실천하기 위해 화양구곡시를 지었다. 趙鍾德은 尤庵 宋時烈(1607 ~1689)의 9세손 宋秉珣(1839∼1912)의 제자이다. 조종덕은 평생 일곱 번 화양구곡을 탐방했다. 조종덕은 1911년 화양구곡을 탐방했을 때 화양구곡시를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조종덕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小華遯人이라 자칭하고 經傳과 程子朱子書를 탐독하면서 은둔했다. 趙愚植은 崔益鉉(1833~1906)의 제자이다. 趙愚植은 1906년 1월 25일 崔益鉉이 전라북도 泰仁 武城書院에서 발기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조우식은 1910년 화양구곡을 탐방하고 화양구곡시를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두 사람은 기호학파 우암학맥 사림의 제자로 尊師意識과 尊周大義意識을 행동과 문학으로 실천했다. 이 두 사람이 지은 華陽九曲詩에 표출된 尊周大義意識의 形象化 樣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尤庵의 尊周大義意識의 聖地化에 대한 讚揚, 둘째, 淸에 대한 復讐雪恥의 좌절에 대한 痛恨, 셋째, 明나라 神宗皇帝의 공덕에 대한 崇慕 등이다. 이렇듯 이들이 화양구곡을 탐방하고 화양구곡시를 지은 이유는 조선말 일제강점기에 ‘존주대의의식’‘항일의지’를 공고히하고 그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의식을 화양구곡시에 표출했다. 이로서 그들은 선비로서 자기시대의 도리를 다했다고 그 시대적 구곡문학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Abstract

Jo, Jongdeok(趙鍾悳1858~1927)and Jo, Usik(趙愚植1869∼1937), two persons’ Jonsa sense(尊師意識) and Jonjudaiui sense(尊周大義意識) in order to firmly practice so they visited Hwayanggugok. And in order to strengthen the sense and to celebrate the visiting they composed Hwayanggugok poems. Jo, Jongdeok(趙鍾德) is a disciple of Uam Song, siyeol(尤庵 宋時烈, 1607~1689)’s 9th descendent, Song, Byeongsun(宋秉珣1839∼1912). Jo, Jongdeok had titled by himself as Sohwadunin(小華遯人) after Gyeong- sulgukchi in 1910 and he lived hidden as he read cannon(經傳) and Jeongjajujaseo(程子朱子書). Jo, Usik(趙愚植) is a disciple of Choi, Ikhyeon(崔益鉉, 1833~1906). Jo, Usik(趙愚植) took part in revolt Japanese movement caused Taein Museongseowon(泰仁 武城書院) in Jeollabukdo in Jan. 25th in 1906 by Choi, Ikhyeon(崔益鉉). Like these, two persons practiced as a action and literature of Jonsa sense(尊師意識) and Jonjudaiui sense(尊周大義意識). These two persons’ Hwayanggugok poems(華陽九曲詩) can be greatly divided into three types of expressing Jonjudaiui sense(尊周大義意識) phases(樣相). At first, it praised certain fact that is made sacred place(聖地) which strengthened Hwayanggugok(華陽九曲) through Jonjudaiui sense(尊周大義意識) by Uam Song, Siyeol. Second, they expressed their inconvenience feelings about frustraiting plan which is revenged(復讐) the dishonor from Cheong(靑) Chinese country. Third, they expressed the sense of yearn(崇慕心) for charity(功德) of Sinjong emperor(神宗皇帝) of Myeong(明) Chinese country. As looking the above search, these persons visited Hwayanggugok and composed Hwayanggugok poem in order to strengthen the intention which practice firmly ‘Jonjudaiui sense’ in late Joseon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y had showed their feelings at Hwayanggugok poem. Like these, they did their duty in their contemporary era as classical scholars so I can put meaning of the contemporary Gugok literary.

참고문헌 (17)

  1. 朴貞一, "率性齋遺稿", ~
  2. 徐顯夏, "晩齋遺稿", ~
  3. 魏啓龍, "梧軒遺稿", ~
  4. 趙愚植, "省菴集", ~
  5. 趙鍾悳, "滄庵集", ~
  6. 鄭國彦, "薇齋集", ~
  7. 金文基, "九曲歌系 詩歌의 系譜와 전개양상", 국어교육연구, 23, pp.31~86 (1991), 국어교육연구회
  8. 李相周, "충북의 구곡과 구곡시- 선인의 길을 따라 한시와 자연속으로", 충청북도 충북개발연구원 부설 忠北學硏究所, 1~310 (2007)
  9. 李相周, "九曲詩의 傳統과 華陽九曲詩", 敎育科學硏究, 13, pp.75~98 (1999), 청주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10. 李相周, "“구곡문화관광특구”와 그 구곡 설정자들의 학맥", 중원문화논총, 9, pp.101~139 (2005),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11. 이상주, "朝鮮後期 山水評論에 대한 一考察", 漢文學報, 14(1), pp.215~244 (2006), 우리한문학회
  12. 이상주, "華陽九曲·仙遊九曲의 完成過程과 華陽九曲圖", 漢文學報, 18(1), pp.525~555 (2008), 우리한문학회
  13. 李相周, "淸風明月의 역사와 문화- 景雲 申哲雨先生 서거십주년추도기념논총", pp.245~297 (2013)
  14. 李相周, "慶南地域 士林들의 華陽九曲詩에 대한 考察", 제124차 하계학술발표대회, pp.53~76 (2016), 동양한문학회
  15. 이상주, "慶南地域 士林들의 華陽九曲詩에 대한 考察", 동양한문학연구, 45, pp.103~137 (2016), 동양한문학회
  16. 李鍾虎, "한국 구곡문화 연구의 현황과 과제:구곡경영과 구곡시의 전개를 중심으로", 안동학연구, 10, pp.9~67 (2011)
  17. 전영권, "속리산국립공원 내 화양구곡(華陽九曲)의 보존과 활용방안",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9(4), pp.683~696 (2013), 한국지역지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