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好達治文?における政治性-??期と?後の一連の軌跡を通して?
Political Characteritics in Miyoshi Tatsuji -Through the war period and postwar serial t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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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미요시타쯔지의 전쟁시의 전력을 문제삼는 것은 미요시연구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요시가 전쟁기간중의 자신의 전쟁시와 관련해서 어떤 태도를 가졌느냐에 대해서는 미요시개인뿐만 아니라 전체시단에 있어서도 일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결론적으로 미요시는 전쟁중의 자신의 전쟁시와 관련해서 패전후 10년이상이 지나도록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내어놓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그는 「패전의 책임은 문화인에 있지 않다. 최종적으로는 천황이 책임을 지고 퇴위를 해야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런 미요시의 태도는 타카무라코타로, 이토시즈오등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전혀 상반된 경우이기도 하다. 시단에서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미요시에 대한 비평이 있긴하였지만, 1950년이후에는 미요시관련 비평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와 반비례적으로 미요시의 활동은 더 활발해져서 1953년에 미요시는 예술원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미요시에 대한 시단의 평가는 미요시를 주로 서정시인, 자연시인에 한정해서 평가해 온 경향이 있다. 미요시연구사에 있어서 「미요시타쯔지문학의 정치성」이라는 주제가 거론된 적은 필자의 확인한 바로는 없었다. 패전을 기준으로 해서 미요시가 보여준 이러한 행동은 미요시문학의 정치성과 관련해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말할 수 가 있다. 미요시연구를 주로 서정시인, 자연시인의 범주로 한정시키려고 하는 것은 미요시의 전체상을 파악함에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전후 미요시가 자신의 전쟁중의 과업에 대한 입장표명없이 시단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나까무라신이찌로의 지적을 빌리자면, 일본의 전통적인 문학토양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나까무라는 일본은 중국의 경우와는 역사적으로볼 때 정치와 관련을 가지는 문학이 발달할 수 없었다고 지적을 하고 있다. 나까무라는 미요시도 이런 일본문학의 고유한 전통의 대변하는 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요시는 전쟁중에 국책에 적극협력하는 전쟁시를 썼고, 또 여러수필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많은 발언을 했다. 전후에도 미요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책임론을 거론하며, 자신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 미요시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양태는 미요시문학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요시의 정치성을 보이는 발언의 뒤에는 미요시의 강한 「일본애」가 있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일본애」가 미요시의 서정문학의 깊은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것을 생각할 때, 미요시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언급없이 순수하게 미요시문학을 논하는 것은 여러가지 제한성이 있다고 말 할수 있다.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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