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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晛의 <朝天日錄>에 나타난 의례관련 사실들과 그 의미

A study on royal and folk rituals and its meaning of Ming dynasty based on the book Jocheon-illok(朝天日錄) by Choi, 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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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일록(朝天日錄)』은 광해군 즉위년에 최현(崔晛)이 명(明)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의 동지사행(冬至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받아 가서 기록한 사행일기이다. 이 사행에서 최현은 46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장관이란 큰 직책을 수행하였는데, 『조천일록』에는 조선과 명의 조정에서 나타나는 의례와 명 민간에서 나타나는 의례에 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최현의 『조천일록』에서 나타나는 조선에서의 의례는 친명사대(親明事大)의 외교정책 중 하나인 배표례(拜表禮)를 선조(宣祖)의 국상으로 인해 권정례(權停例)로 행하였고, 전별연(餞別宴)은 국왕이 내려주는 사연(賜宴)과, 평양(平壤) 기자묘(箕子墓)에서 중사(中祀)로서 제사지내고 을밀대(乙密臺)에서 지방관이 내려주는 공식적 전별연이었다. 의주(義州)는 국경을 넘어가는 관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으로 들어오는 첫 길목이 되기도 하는 전별 장소로서, 사연(私宴)이 베풀어진 전별연이었다. 최현의 『조천일록』에서 나타나는 명에서의 의례는 공적인 의례와 사적인 의례로 구분되었는데, 공적인 의례에는 현관례(見官禮)⋅현당례(見堂禮)⋅현조례(見朝禮)와, 하마연(下馬宴)과 기타 전별연이 해당되었다. 현관례는 회원관(懷遠館)에서 요동도사와 부총병에게 행하였고, 회동관(會同館)에서 제독주사에게도 행하였다. 현조례는 북경 자금성(紫禁城) 오문(午門) 밖에서 오배삼고두례(五拜三叩頭禮)로 황제를 알현하였고, 현당례는 예부상서에게 행하였다. 또 최현 일행은 조천궁(朝天宮)에서 두 번의 연의(演儀)를 통해 자금성 동지 하례(冬至賀禮)에 참석하였다. 최현 일행은 회원관을 지나면서 현관례뿐만 아니라 하마연도 선조의 국상으로 인해 면제받았다. 기타 전별연은 최현이 명의 조정에서 공식적인 전별연을 전해 듣고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최현의 『조천일록』에서 나타나는 현관례는 조선의 입장에선 경사스러운 예식의 하나로서 가례(嘉禮)에 해당되고, 명의 입장에선 조선은 여러 나라 사신 가운데 하나로서 조선사신을 영접하므로 빈례(賓禮)에 해당되는 예를 국가 간에 서로 행하였다. 사적인 의례에는 개인 간에 베푼 전별연으로, 탐풍(貪風)이 만연한 회원관에서 표류당인(漂流唐人)이 베풀어 준 연회와 산해관(山海關)에서 최현 일행이 임무를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성절사(聖節使)에게 베푼 연회, 모두 사연(私宴)이었다. 최현이 살았던 시기는 주자가례(朱子家禮)식의 상제(喪制)가 만연하게 퍼져있던 예학(禮學)의 시대였다. 그래서 한 사람이 유교식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지킨다고 해서 중원 모두가 유교식 상례와 제례를 지키면서 예를 다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례와 제례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잘 살고 못 살고와 상관없이 부모상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옛 법도가 무너졌음을 비판하였다. 『조천일록』에서 나타나는 명 민간의 상례와 제례는 최현이 생각하는 예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위였다. 최현이 생각하는 예의 기준은 『예기(禮記)』와 『주자가례』에 준하는 예로서, 이 기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비례(非禮)로 봤다.

Abstract

Choi, Hyeon’s Jocheon-illok(朝天日錄) is an envoy journal recording the participation as a government official in the winter envoy march for the Emperor Shenzong(神宗, 萬曆帝, Wanli) of the Ming Dynasty, in the enthronement year of Gwanghaegun(光海君). In this envoy march, Choi, Hyeon performed a big position of government official at the age of 46. His Jocheon-illok(朝天日錄) contains the contents about all sorts of objects or problems related to system, policy, society, custom, and people’s livelihood viewed in Ming. Regarding the ritual of the Joseon Dynasty shown in Choi, Hyeon’s Jocheon-illok(朝天日錄), the baepyo ritual(拜表禮) which was one of the diplomatic policies close to Ming was simply performed without the king due to the national mourning of King Seonjo(宣祖). The farewell party(餞別宴) included the national feast provided by the king, and the ancestral rite at the shrine of Kijain(箕子墓) in Pyeongyang(平壤). It was the official farewell(餞別宴) party provided by a local governor in Eulmildae(乙密臺). Not only as a gateway to cross the border, but also as the first path to enter Joseon, Uiju(義州) was the place where the farewell party(餞別宴) was held. Regarding the ritual of the Ming Dynasty shown in Choi, Hyeon’s Jocheon-illok(朝天日錄), the greeting ritual was performed for Liaodongdusi(遼東都司) and Buchongbyeong(副總兵) at Hoewongwan(government office for envoy, 懷遠館), and also for Jedokjusa(提督主司) at Hoedonggwan(government office for envoy, 懷東館). Choi, Hyeon aimed to inform the pervading corruption of China by fully listing the bribe goods/quantity and official rank/name of Ming’s government officials who offered them at Hoewongwan(懷遠館). When passing Hoewongwan(懷遠館), Choi, Hyeon’s party sometimes was freed from greeting ritual while the private feast for envoy was exempt due to the national mourning of King Seonjo(宣祖). Choi, Hyeon’s party greeted the emperor with five times of deep bow and three times of light bow(五拜三叩頭禮) outside of O-mun(午門) of Forbidden City(紫禁城) in Beijing, and also visited and greeted Yebusangseo(禮部上書). Also, Choi, Hyeon’s party attended the winter ceremonial ritual(冬至賀禮) at Forbidden City(紫禁城), by following two times of ritual practice in Jocheongung(朝天宮) The farewell party was a feast provided by Pyoryudangin(漂流唐人) in Hoewongwan(懷遠館). As a feast for Choi, Hyeon’s party who was about to go back to Joseon after completing the duties in Sanhaegwan(山海關), they were all private feasts. And there was a case of hearing and recording the news about official farewell party from the Ming’s royal court. The greeting ritual shown in Choi, Hyeon’s Jocheon-illok(朝天日錄) was one of the joyous ceremonies in the position of Joseon. In the position of Ming, Joseon was one of the envoys from many countries, so that the courtesy related to the ritual for receiving guests was conducted. The period when Choi, Hyeon lived was the age of ritual studies filled with the funeral rites system of Confucian ritualism. Therefore, no one thought that a single person who obeyed the Confucian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would mean that everyone in the central position would obey the Confucian funeral and ancestral rites. It was criticized that the old custom was collapsed because the parents’ funerals were not fully obeyed regardless of position and wealth. The funeral rites and ancestral rites shown in Jocheon-illok(朝天日錄) were the acts out of the courtesy standard in Choi, Hyeon’s opinion. Choi, Hyeon’s courtesy standard was the courtesy under the Classic of Rites(禮記) and Confucian Ritualism(朱子家禮) As they were the acts out of this standard, they were regarded as non-court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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